
지난 12월 11일 오전 3시 20분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故김용균(24) 씨는 설비점검을 위한 순찰 중이었다. 발전소 내 컨베이어벨트 구역은 조명이 설치되지 않아 어두웠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여러 차례 조명 설치를 요구했으나,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본 장비인 헤드랜턴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대신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기계를 들여다보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기계에는 안전 스위치가 있어, 2인1조로 일하다가 한 사람이 몸이 끼이면 다른 사람이 줄을 당겨 기계를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혼자였고, 사망한지 4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동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전날까지 함께 밥을 먹고 일하던 동료들이 시신을 수습했다. 12월 20일 청주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김씨의 동료는 “벨트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싸늘하게 식어버린 용균이를 부여잡고 인공호흡이라도 해보려고 용균이의 얼굴을 잡아보자 두 손에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는 모 대리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동료들이 용균이를 살리고자 발버둥치고 있을 때 한국서부발전은 하청업체 정비원 두 분을 급히 불러 정비를 시작하였고, 소방관들이 용균이를 수습하고 있는 와중에도 정비를 하여 무려 80분간이나 벨트를 가동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자기 자식이, 자기 동생이, 자기 조카가 벨트에 휘말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어도 벨트를 과연 기동했을까.”라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노동자들은 이 사고가 ‘죽음의 외주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죽음의 외주화, 간접고용
김씨는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에서 근무했지만, 김씨를 고용한 곳은 한국발전기술이라는 민간 하청업체다. 하청이란 ‘타인이 고용한 노동자를 자신의 사업장에서 자신의 사업을 위하여 직접적으로 편입시키거나 결합하여 사용 또는 이용하는 형태로서 그 근로자에 대해 그 자신이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하지 않는 경우(강성태, 2007)’를 의미한다. 하청 노동자는 법적으로는 하청업체에 고용된 상태이지만, 원청에 출근하고 원청에서 일한다. 이러한 고용 형태를 간접고용이라고 부른다. 간접고용은 1960년대부터 조선, 전자,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 이용되어 오다가, 1997년 이후 폭발적으로 급증하였다.
기업이 하청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인건비 절감과 노동 유연성(노동력이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노동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꼽는다. 2013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원청노동자가 100만원의 임금을 받을 때 1차 하청노동자는 71만원, 2차 하청노동자는 69만원, 3차 하청노동자는 58만 5000원의 임금을 받는다. 초과급여와 상여금까지 계산하면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원청노동자가 100만원을 받을 때 1차 하청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53만 9000원에 불과하고, 3차에서는 42만원까지 떨어진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하청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훨씬 적으니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간접고용은 ‘위험의 외주화’, 또는 ‘죽음의 외주화’로 불린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의 선지현 공동대표는 “많은 기업들이 효율성이나 비용절감이라는 이름하에 외주화 정책을 폈다. 특히 위험한 업무가 1차 외주화의 대상이 됐다.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내맡겨서 비용을 절감하는 거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철도나 발전 같은 분야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하청업체에 고용돼서 일하고 있다. 신문을 보면 노동현장에서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데, 그 사고의 대부분은 위험한 업무를 하는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난다.”라고 기업의 간접고용 행태를 설명했다.
8배 더 많이 죽는 하청노동자들
위험의 외주화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안전보건공단의 2017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청노동자 1만명 당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0.39명으로 원청노동자(0.05명)의 약 8배에
이른다. 반면 재해율은 원청노동자가 0.79%로 하청노동자(0.20%)보다 훨씬 큰 숫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산재 은폐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산재 신고가 비교적 자유로운 원청노동자와는 달리 하청노동자는 공상(공식적인 산재
절차를 밟지 않고 기업 내부에서 보상해주고 끝내는 것)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재율이 높아지면 보험료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하청업체에서 공상 처리를 유도한다.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하 ‘공동캠페인단’)이 발표한 2018년 최악의 살인기업 7곳에서 사망한 노동자 37명 전원이 하청노동자였다. 공동캠페인단은 또 “2014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산재 사망사건 가운데 건설업의 98.1%, 조선업(300인 이상 사업장)의 88%가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한 사고였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환경미화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난 3년간 사망한 환경미화원 18명 중 16명이 위탁업체 소속이었다.
원청은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제시한 하청업체와 계약하므로, 하청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가 많다. 김씨가 2인1조로 순찰하지 못한 것, 헤드랜턴을 지급받지 못한 것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 측은 “하청업체가 쓴 입찰가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겨 계약할지 결정하고, 이 금액을 바탕으로 용역비를 구성한다. 그 안에 장구 구입비인 ‘안전관리비’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하청업체는 원청과 계약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위한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오지 않은 ‘비정규직 제로 시대’
간접고용은 기간제 및 단기간 고용, 무기 계약직 고용, 특수 고용(독립적인 사무실 등이 없이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하지만 법적으로 자영업자로 취급되는 경우. 택배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 보험설계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과 함께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약속했으나 노동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0곳 이상의 공공기관이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자회사 역시 원청의 도급 금액에 의해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되므로 하청업체와 다르지 않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철도공사다.
KTX의 승무원, 열차정비원, 역무원, 상담원 등은 한국철도공사가 아닌 자회사 소속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이들을 직접고용하지 않는 이유를 ‘안전업무가 아닌 단순 매표·서비스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승무원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들의 안전을 실제로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안전교육에서도 배제되고 있으며, 이는 승객 안전 문제로 직결된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잡월드 역시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이 43일 동안 전면 파업을 벌이며 반대했으나 강행되었다. ‘비정규직 제로’ 약속이 이루어졌던 인천공항공사는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한 비정규직 3천여 명을 경쟁 채용하겠다고 발표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가 아닌 해고 위기에 놓여 있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노동계는 산안법 개정과 더불어 기업살인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월 20일에 청주에서 열린 故김용균 추모문화제에서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김선혁 수석부본부장은 “영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아주 큰 벌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영국은 산업재해로 한 해 154명이 죽는다. 우리나라의 13분의 1밖에 안 된다. 우리도 영국처럼 사람이 죽으면 자본에게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만드는 법안투쟁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정부도 기업살인법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cts)은 영국에서 2007년에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법으로, 기업이 인명재해를 초래한 경우 기업에게 범죄 책임을 부과한다. 2011년 시험광구에서 샘플을 채취하던 지질학자가 지반침하로 인해 질식사한 사건이 일어나자, 영국법원은 기업살인죄를 적용해 회사에 연매출액의 250%에 달하는 385,000파운드(한화 약 6억7천3백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바 있다. 김종구 조선대 교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기업과 우리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을 고양시키고 안전한 사회를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기업살인법은 의미를 갖는다. 다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외국의 입법례와 우리 기업문화 및 사회문화적 배경과 현상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라며 기업살인법의 긍정적 측면을 설명했다(‘기업살인법과 규제개혁’, 2014).
한국에서는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기업살인처벌법)’을 2016년 발의했으나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내가 지난 2016년 6월에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 처벌에 관한 법률안’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그리고 2017년 4월 노회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 등, 일명 ‘김용균 3법’은 산업안전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형사처벌 및 가중처벌로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법안이다. 참사에 대한 제도적 해결방법이 논의만 이어지다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정의당의 ‘김용균 3법’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며 국회의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지난 12월 27일, 이제 ‘김용균법’이라고 불리게 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면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90년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사고로 개정된 후 28년 만이다. 지난 1월 15일 공포된 개정안은 1년 뒤인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적용대상 확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하였다. 산안법 적용대상인 노동자로 한정되었을 때는 택배기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노동자와 배달대행 앱, 대리운전 앱 등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1월 8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등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이 위험을 감수했던 고용들까지 안전망 속으로 포용하게 된 것은 큰 의미”라고 말했다.
위험한 업무 외주화 금지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작업, 허가대상물질을 제조・사용하는 작업의 외주화를 금지하였다. 단 일시・간헐적인 작업이나 하청이 보유한 전문기술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었다. 이를 위반 시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다만 김씨가 종사했던 발전소 설비운전 업무는 여전히 외주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작업중지권 명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할 권리를 명시하였다. 그러나 노동계는 작업중지권이 ‘죽은 권리’라고 지적한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이유로 불이익 처우를 할 시 처벌하는 규정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삭제된 것이다. 민중의소리의 보도에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사고발생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작업을 중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추후에 회사가 자신에게 징계를 내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노동자대피권은 실효성이 없는 법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청의 책임범위 확대
원청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하였다. 원청이 안전・보건조치를 취해야 하는 장소의 범위를 기존 화재・폭발・붕괴・질식 등의 위험이 있는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다. 원청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원청이 지정・제공한 장소 중 지배・관리하는 장소 역시 원청의 책임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통해 하청노동자의 사고 장소가 현행 22개 위험장소가 아니라서 도급인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던 문제를 없앨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기대를 나타냈다.
산재 발생 시 원청 처벌
원청이 안전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을 경우의 처벌 수준을 기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하였다. 법인에 대한 벌금형의 상한액 역시 기존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높아졌다. 만약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5년 내에 두 번 이상 일어날 경우 형이 1.5배로 가중되며, 200시간 내의 범위에서 수강명령을 동시에 부과받을 수 있게 된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제출 강화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사업주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화학 물질의 특성을 설명한 명세서)를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였다. 산안법 개정 전에는 화학물질의 명칭과 함유량을 기업 스스로 영업비밀로 판단해 비공개할 수 있었으나, 개정 후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영업비밀 여부를 심사한다. 만약 화학물질의 명칭과 함유량을 비공개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유추할 수 있도록 대체명칭과 대체함유량은 기재하도록 하여 노동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였다.
사진 출처 : 엘지화학노동조합 청주지부 이동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