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람이었을 수도, 그저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누군가의 죽음은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또는 사회 전체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우리는 애도(哀悼)라고 부른다.
우리는 죽은 이를 위해 애도한다고 말하지만, 그 애도가 당사자에게 닿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애도는 근본적으로 산 자를 위한 소통과 위로의 과정이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사람들이 한데 모인다. 이들은 서로 슬픔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고,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함으로써 떠난 이의 상(像)을 함께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그의 빈자리는 공동(空洞)이 아닌 슬픔과 추억이 머무는 공간이 되고, 남겨진 이들은 비로소 그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상실의 애도 역시 이러한 과정을 요구한다. 사회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품위 있게, 그리고 사려 깊게 애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像)은, 사회가 상실을 딛고 일어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제공하는 등대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애도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지난 1월 28일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 故김복동 선생이 영면했을 때, 우리가 만든 고인의 상은 두 가지 모습이었다. 순수한 소녀와 슬픈 할머니. 티 없이 맑은 얼굴로 말없이 앉아있는 거리의 소녀상에서, 또는 언론도 대통령도 격의 없이 부르는 ‘할머니’라는 친근한 호칭에서, 전시성폭력 피해여성의 인권 회복과 재발 방지에 27년을 투신한 인권운동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할머니, 소녀 같은 사적 호칭은 그의 공적 영역을 지우고, 그 자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만이 남는다. 불완전하게 지어진 피해자의 상은 우리로 하여금 쉽게 분노하고 슬퍼하게 하지만, 그 분노와 슬픔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할머니, 편히 쉬세요. 저희가 꼭 일본의 사과를 받을게요”라는 말이 고인이 평생 힘썼던 세계의 전시성폭력 피해여성(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을 포함하여)들과의 연대와 평화운동을 전혀 계승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故김복동 선생에 대한 애도가 불완전한 애도라면, 이제는 불충분한 애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떤 애도는 다른 애도보다 더 많은 시간과 구체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갑작스러운 상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은 다른 상실보다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몹시 힘들다. 죽음을 납득할 수 없다면 애도 역시 불가능하고, 애도할 수 없다면 죽은 이를 떠나보낼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유족들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故김용균 씨의 유족들이 집에서 조용히 슬퍼하는 대신 거리로 나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이유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들은 죽음을 납득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를 ‘불순함’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유족들의 애도가 순수하지 못하며 정치적 또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 가족의 죽음을 이용한다고 매도한다. 애도가 오래 이어진다는 이유로 “다 끝난 일을 질질 끈다”고 비난하고, “이제 그만들 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이들에게 올바른 애도란 완전히 개인적인 것, 눈물을 흘리고 관을 땅에 묻은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올바른 애도에 하나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면 애도도 개인적일 수 없다. 웃으며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죽음은, 월급을 받으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반지를 사고 싶다던 20대 청년의 죽음은 사회 전체에 아주 깊은 상처를 입혔다. 상실이 개인적인 것과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라면, 그 애도 역시 개인적 방법과 사회적 방법 둘 다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5년이 지나도 노란 리본을 떼지 않는 시민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행진하는 노동자들은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능한(또는 유일한) 방법으로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려는 것뿐이다.
상실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는 공동(空洞)이 남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 한강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장례식이 된 삶’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함으로써 남은 이의 영혼에 생긴 공동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의 현대사는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완결되지 못한 애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비극은 사회에 거대한 공동을 남겼고, 이 공동은 극심한 고통과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사회적 갈등과 반목이라는 모습으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살아나고 있다. 비극에 대한 충분한 애도가 여유나 교양이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의무인 이유다.
떠난 이를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남겨진 고통과 그리움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완전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애도하는 것이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도록, 빈자리가 빈자리로 남지 않도록, 상실을 넘어 그 다음으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