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05. 18.

  꽃다운 아이들과 선한 이웃들의 생명을 어이없이 잃은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럽게 직면시키고 있다. 선장과 승무원은 자신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승객들을 검은 바다 속으로 집어넣고 삼킨 괴물이 되었다. 해경과 해수부는 그 절박했던 순간에도 온 힘을 구조에 집중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오류와 진실을 감추고 윗선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어디 그 뿐인가? 대통령과 ‘안전’행정부 등 중앙통제탑의 초기 대응은 대통령 퇴진 요구를 불러올 만큼 부실했고 무책임했다. 일부 정부 관료, 여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사회지도층은 생명을 빼앗긴 이들을 다시 죽이고, 통한의 가슴에 아이와 가족을 묻은 유족들의 상처와 국민들의 아픔에 소금을 뿌리고 칼질을 했다.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출항하지 말았어야 할 배다. 아니 운항자체가 오래 전에 금지되었어야 할 배다. 살인도구인 이 배에서 승무원들은 항상 일을 했고 날마다 새로운 승객들을 싣고 위험한 항해를 했다. 선주인 청해진 해운은 이윤만 추구하고 선원의 안전과 복지,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한국해운조합은 선령을 늘리고 각종 규제와 감독이 허술해 지도록 조직적으로 로비했고 뇌물을 뿌렸다. 국가를 대표하는 고위 공무원들은 시민인 승객의 안전과 생명, 복지와 안녕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지위와 권력을 활용하였고 퇴직 후 산하 기관과 유관기관에 포진해 온갖 단물을 빨아먹는 비리 마피아를 형성하였다. 해운조합의 수탁과제를 맡은 대학교수와 정부의 연구의뢰를 받은 연구원들은 일본에서는 팔지 못하는 배가 수입되도록 선령의 연장을 정당화했고 선박검사의 전문가 집단인 한국선급은 부실한 검사와 불법을 눈감아 주기를 밥 먹듯이 했다. 사태이후 언딘을 통해 드러난 한국해양구조협회 역시 기업과 국가의 관료가 결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을 감시하고 제제해야 할 또 하나의 보류, 시민사회마저 그 역할을 스스로 부정했거나 존재감이 없었다. 항운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배의 위법을 감시하고 고발해야 하건만, 스스로 노동자를 배신하고 선주의 불법과 탈법을 묵인했다. 노동조합은 파업을 해서라도 이 위험한 배의 운항을 막아야 했지만, 이를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기업, 노조, 전문가 뿐 아니라 공정해야 할 국가의 공무원이 다 썩었고 비리 마피아가 사회의 안전과 안녕을 위협했다.
  세월호는 교육과 연구를 주 업으로 하는 교육계에도 경종을 던진다. 무모한 수탁연구와 전문가 훈련, 그리고 ‘명석한’ 국가 관료들을 길러낸 엘리트 교육, ‘가만히 있어라’고 가르친 순응 교육, 냉대했던 기술교육과 훈련이 밑바닥부터 부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어둠의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승객들은 죽음의 순간에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학생들과 끝까지 함께 했던 교사들, 실종자를 다 구하고자 했던 양대홍 사무장, 박지영 승무원, 친구를 구하려 다시 돌아간 학생들, 생의 마지막 까지 엄마 아빠와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하려 했던 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또 세월호의 위험을 알리고자 했던 다른 선주들, 노조 민주화를 외친 노동자, 국민권익위원회에 그 위험성을 미리 말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 선원도 있다. 평범한 상식의 시민인 이들의 가치와 규범이 주류가 될 때 희망은 현실이 된다. 이 진실의 가치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특권의 주류가 만든 돈, 지위, 점수, 권력이라는 허위의 가치와 규범을 대체할 때, 죽은 이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가슴에 살아 돌아 올 것이다. 지금은 이를 위한 황금의 시간, 엄중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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