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전 세계가 경악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지진 자체가 가져다 준 피해 못지않게 커다란 재앙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이다. 건설된 지 30년이 넘은 낡은 원전은 거대한 쓰나미의 힘 앞에 무기력했고, 일본 정부의 대처는 그 이상으로 무기력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시민들에게는 대피령이 내려져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피난 길에 오른 상태이며, 다른 국가들도 일본 내의 자국 국민들에게 피난이나 귀국을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되어 일본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다행히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으로 향한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원전으로의 전력 공급이 재개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사태가 차츰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에서 유출된 방사능이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상륙한다’는 내용의 유언비어를 문자 메시지로 최초 유포한 용의자가 검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근거를 알 수 없는 이런 저런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유언비어 때문에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방사능 사고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세슘 중화에 효과가 있다는 요오드 알약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동이 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방사능 방호복의 가격이 갑자기 치솟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은 정작 방사능이 아니라 각종 루머를 통해 전파된 허황된 공포였던 것이다. 이러한 공포의 매개체는 트위터로 대표 되는 각종 SNS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스마트폰의 채팅 프로그램 등이었다. 이른바 ‘재스민(Jasmine) 혁명’이라 불리는 중동지역의 민주화 운동을 촉발 시키며 새 시대의 소통수단으로 주목 받았던 매체들이 이번에는 역으로 허언과 공포의 매개체가 된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와 같은 IT 기기의 보급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더욱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각종 루머의 확산 속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물론, 이처럼 과학적 근거도 없고 그 출처도 확인하기 힘든 각종 루머와 부정확한 정보들이 마치 진실인 양 전파되고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좀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기사를 만들어 내는 언론의 탓도 크다. 국내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를 기사에 사용하거나 사실 관계를 교모하게 비틀어 자극적인 내용을 담기 바빴다. 특히, 일반인들이 방사선 수치를 나타내는 단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여 ‘수백 배의 방사능’ 혹은 ‘수천 배의 검출량’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언론의 선정적 보도 이상으로 루머와 공포를 확신 시키는데 일조한 것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들의 태도에 있었다. 앞서 언급하였던 방사선 수치와 관련된 용어나 단위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단 30초만 투자하더라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며, 편서풍이란 무엇인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기의 흐름이 어떠한지 또한 검색 한두 번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방사능’이라고 하는 말이 가져다 주는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과학적인 근거도 없고, 그 출처도 불명확한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이를 마구 퍼뜨린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일반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는 것과 단순히 공포에 사로잡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유언비어와 루머가 사회적인 이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지난 광우병 파동 때 경험한 바 있다. 광우병이 공기로도 전파될 수 있다거나, 쇠고기 이외의 다른 육류를 통해서도 전파된다거나 하는 유언비어는 쇠고기의 수입•유통 과정을 좀 더 투명하고 안전하게 하자는 건전한 비판의 설득력까지 떨어뜨렸고, 결국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시민운동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다.
대학에 재학 중인, 혹은 대학을 졸업하여 지성인을 자처하는 이라면 정보 수용에 있어 항상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근거없는 소문에 휘둘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오히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계기로 하여 우리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실태를 확인하고 위기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지성인다운, 합리적이고 올바른 대처이다.
- 기자명 이건호(국어교육•04)
- 입력 2019.01.0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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