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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정사는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빈도로 이뤄지는지와 무관하게, 끝까지 부인하고 감추는 것이 우리사회의 룰이다. 이 규칙을 언감생심 어기는 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비난들이 쏟아진다. 혼외정사를 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떳떳이 말한다는 사실에, 세상은 당혹하고, 히스테릭한 집단적 경멸을 드러낸다. 김부선이 인터뷰에서 유부남 정치인과 짧은 연애를 했던 걸 밝혔을 때에도, 신정아의 책이 기록적인 관심을 끄는 이유의 핵심도 거기에 있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첫 번째 죄목은 왜 굳이 그걸 밝혀서 <멀쩡한 가정>을 파괴하느냐는 것이다.
멀쩡한 가정? 파괴? 사람들이 말하는 멀쩡한 가정은 뭘까. 부부가 있고, 그 밑에 자녀들이 있는, 그런 형식적인 정상성을 말한다. 부부간에 애정과 신뢰가 남아 있건 없건, 이미 몸과 마음은 저 멀리로 달아나고, 형식만 부부로 남아있을지라도 <멀쩡한 가정>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소위 불륜이 세상에 드러나고, “타인”들이 그들의 멀쩡하지 않은 가정의 속내를 알아버린 후엔, 더 이상 그 가정은 덮고 있던 허우대를 지니기 힘들어진다는 논리다.
신정아 이후에 학력위조가 폭로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실형을 산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하던 일에서 하차하거나, 사과의 말 한마디 던지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세상은 여러 가지 죄를 그녀에게 물었으나, 결국 법정에서 인정된 죄는 학력위조로 얻은 교수직에 대한 대목이었다. 긴 학력위조자들의 명단에서 유독 그녀의 이름만이 현대판 마녀처럼 선명하게 남았던 것은 사법적 판단은 받지 않았을 지언정, 그녀가 고위직의 유부남과 나눈 시끌벅쩍한 사랑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기에 이른 노무현 정권을 질타하는데, 그녀가 청와대 인사와 벌인 로맨스는, 황색 언론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였다. 맹렬한 관음증을 드러내며 사건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기대에 충성스럽게 부응하는 취재열기는 합성된 신정아 누드사진을 게재하는 문화일보의 행패에서 절정을 이뤘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변양균과의 관계에 대하여, 그것이 안타깝게 끝났을지언정,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한번도 부인하지 않았다. 이번 책에서는 자세히 그들의 사랑의 장면을 상세히 그려낸다. 그녀는 자신을 “꽃뱀”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장 참기 어려웠다고 말해왔다. 한국사회가 통상적으로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고, 감추고 부인하는 대목에서, 그녀는 자신의 진실함을, 그녀가 나누었던 사랑만은 명백한 진실이었음을 주장한다.
비록 학력사기를 쳤고 인생의 많은 대목에서 거짓으로 살아왔을지언정, 변양균과의 사랑이라는 대목을 통해, 자신의 삶에도 진실한 대목이 있었음을 밝히고 싶어하는,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통념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 책은 기존의 통념과 부딪히면서 요란한 파열음을 내는 중이다.
정운찬처럼 감옥 밖 밝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학위를 갖고, 상당한 권력깨나 주무르던 남자들이 그녀 앞에서 벌인 추태들을 열거한 대목에선, 자신을 발가벗긴 사회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다.
신정아의 책이 불러일으키는 소란을 지켜보며, 문득 96년에 나온 이명세의 영화 <지독한 사랑>을 떠올렸다.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중년 남성이 자신의 책에 서평을 쓰려는 젊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로 강수연과 김갑수가 소위 불륜의 사랑을 나누는 남녀로 등장한다. 그 영화의 시사회가 있던 날, 영화를 보고 난 평론가들이 “이 영화는 우리(중년의 남자들) 모두의 꿈을 말하는 영화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남아있다. 그 때, 나는 최초로 감히 우리가 말하지 않아왔던 중년의 사랑에 대핸, 한국사회의 고백을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와 소설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결혼한 사람이 결혼 밖에서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며, 그러한 픽션들은 곧 우리 삶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지만, 현실에선 그것이 남의 일일지라도, 도덕의 기치 아래, 넙죽 엎드려, 관성대로 경멸을 내뱉는다.
“종이가 아깝다”, “조용히 숨어살 일이지, 뭐가 자랑이라고 까발릴까”, 이 책에 대한 냉소, 힐난 일색의 반응과 이틀 만에 5만부가 팔려나가는 현상 사이의 갭은 섹슈얼리 관한 우리사회의 이중성의 무게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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