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판이나 사회에서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때 단골로 써먹는 무기가 ‘친북 좌파’라는 낙인찍기다. 남북 대치 상황과 냉전을 겪은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있어, 이러한 낙인찍기는 상대방의 정치적 인기를 떨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대를 매장시킬 수도 있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다. 물론 이 기성세대들은 ‘친북’이 절대 ‘좌파’나 ‘진보’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간과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 ‘친북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흔히 ‘진보정당’이라고 이야기되며, 스스로 1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진보세력의 원류라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다.
우선 ‘친북’이라 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 보자. 쉽게 생각하자면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라는 말쯤으로 풀이될 수 있다. 북한이라는 것은 북한에 사는 2200만 동포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북한의 정부나 지도자를 일컫는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북한 동포들의 어려운 사정을 딱히 생각하여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친북’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친북’을 비난하는 것은, 현재 북한 사회가 분명히 억압적 체제 속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빼놓고 북한을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북한 동포들이 그토록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이 자신들의 영달에만 골몰하고 인민의 복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며, 비판의 목소리는 철저히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부, 조선로동당과 각종 부속 기관들, 그리고 그것을 이끄는 독재자 김정일에게 호감을 갖거나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히틀러나 스탈린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북한 체제는 사민주의와는 물론 공산주의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한에서는 시민들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흔히 ‘인민 재판’이라 불리는 즉석 공개 재판에서 공정한 판결은 기대할 수 없으며, 언론·출판·종교의 자유는 철저히 제한되어 있고, 정치범들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고문 등 매우 혹독한 처우를 받는다고 한다.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감시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학교와 군대에서는 김 일가에 대한 우상화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김정일 일가와 조선로동당의 고위 간부들, 군 장성들은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식량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자신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인권과 노동권 등 ‘진보·좌파적 가치’를 주장해 왔는데, 이러한 가치를 적용시키는 것에서 북한만 예외로 두고 있는 듯하다. 탈북한 사람들을 통해 북한 사회의 현실이 어떤가에 대한 증언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이것에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인도적인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한 바가 없다.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태도는 남한에서 빈민·장애인·노동자 등의 인권을 주장하고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운영 등을 비판하는 것과 대비된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러한 이중 잣대 때문에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비판받을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전세계에서 벌이는 행태와 한나라당 등 국내 기득권층들은 비판하면서도 세계 최악의 독재체제를 그냥 보아넘겨주고 있다. 도리어 3대 세습 독재에 대해 “북한의 문제는 북한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방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을 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북한을 사실상의 외국으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평소 민주노동당 등은 북한 정권을 두둔할 때 ‘우리 민족’이라는 논리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아니 설사 북한이 사실상의 외국이라도, 인류 전체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정희 대표는 모른다는 것인가? 그들은 더 이상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경력과 노동자·농민·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팔아 ‘정통 진보’임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민주노동당은 더 나아가서 북한 독재정권의 논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06년 북한의 핵 실험 당시 민주노동당의 한 인사는 “북한의 핵 실험은 미국의 위협에 대한 정당 방위”라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봐야 동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적·경제적으로 별 실익이 없어 북한 정권이 붕괴될 정도의 위협은 가하고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이나 폭격 역시 현실적으로 주변국들의 인적·경제적 피해를 엄청나게 발생시키기 때문에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이렇듯 남한에서는 모두가 인간다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북한 동포가 당하고 있는 인권 탄압에 대해 침묵하고,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이들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진보의 가치를 배반하는 일이다.
끝으로 친북세력과 야합하는 길을 단호히 거부한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비록 자신들보다 세력 있는 정당과 연합하지 못해 내년 총선 승리는 어렵겠지만, 오로지 ‘반한나라당 연합’ 논리만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따돌림 받고 모욕당하겠지만, 외롭더라도 진보의 가치를 배반하지 않는 올곧은 선택을 지지한다.
- 기자명 김진우 기자
- 입력 2018.12.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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