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열가지 테마로 보는 교육박물관>
1. 교육이란 이름으로 담겨진 문화유산
2. 촛불이 타기 전에 시를 지어라
3. 성균관 이야기
4. 아침 먹고 공부, 점심 먹고 공부, 저녁 먹고 공부
5. 조선 시대의 전문가 역관 홍순언
6. 신식 학생으로 살아 간다는 것
7. 우리말은 일본말?
8.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9. 무엇으로 공부할까?
10. 훈맹 정음?
대청 위에는 대한 태극 국기를 정간에다 높이 세우고 그 다음에는 동서 양 통상 각국의 국기를 차례로 세웠으며 각색 교의를 절차 이쎅 벌려 놓고 청인(淸人:청나라 사람)이 요리를 각색으로 판매하더라. -‘독립신문’, 1896년 6월 2일자, 잡보
가을 하늘, 펄럭이는 만국기, 아이들을 응원하는 부모님과 주민들, 학교 앞을 가득 메운 간식 좌판 등등 운동회 하면 떠올리게 되는 모습들이 115년전 ‘독립신문’에서 소개된 운동회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 놀라게 된다.
그럼 그시절을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운동회를 경험해 보셨을까? 운동회는 개항 이후 서양식 교육이 들어온 후에 시작된 행사이기 때문에 시골에 사셨던 우리 할아버지는 아마도 운동회라는 걸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다.
100여전 전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전에는 보지 못한 운동회라는 새로운 행사가 생겨났을까?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76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한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영국 등 수 천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서양의 나라들을 접하게 되고 그들이 주도하는 문명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풍속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조선 정부에서도 서양의 기술을 배우고 제도를 받아들여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중 민간이나 정부에서 많은 신경을 쓴 것이 교육이었다.
서양 제국이 강성한 데에는 교육이 근본을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생각 아래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전통 사회에서는 중인들이 주로 다루던 수학이나 과학, 외국어와 같은 실용 학문을 중요하게 다루게 되었고 중국을 중심으로한 세계관도 변화되어 서양의 역사(‘만국역사’, ‘태서신사’ 등), 서양의 지리(‘만국지지’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지식이나 덕과 함께 육체의 건강에도 관심을 가져 체조라는 과목이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였다. 운동회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겨난 행사였다. 이렇게 개화기에 새롭게 구성된 과목들은 오늘날 우리 교육의 기반이 되어 오늘날 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학문을 배우는 신식 학생들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공부를 했을까? 그리고 당시의 교육 환경을 어떠했을까? 교육박물관의 한국교육사실 Ⅱ에서는 이런 의문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한국교육사실 Ⅱ의 ‘서양 문물이 들어오다’ 코너에서는 개화기 교육의 제도적 측면과 실제 교육 모습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코너에서 볼 수 있는 ‘서유견문’은 미국과 유럽을 방문했던 유길준이 쓴 책으로 새로운 교육이 왜 필요한 지 말해 주고 있으며, 1907년에 발간된 ‘법규류찬’은 당시 새로운 교육 관련 규정을 수록하고 있따. 신교육 체제에 맞춘 각종 과학 교과서와 세계사, 세계지리 교과서, 오늘날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에서 최초로 발행한 교과서인 ‘신정 심상 소학’(1895년)도 볼 수 있다. 한편,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우리 교육을 왜곡한 일본 통감부가 출판 금지한 각종 도서를 만날 수 있으며, 애국계몽을 위해 활동했던 각종 학회의 학회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희귀 자료로 개화기 한글학자였던 주시경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제작한 강습 자료인 ‘조선말갈’도 볼 수 있다.
‘신식 교육의 현장’ 코너에서는 개화기 교육현장을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16면으로 구성된 전자책을 만들었다. 당시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 학생 모집 기사, 시간표, 시험문제, 졸업장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 선교사가 1905년부터 1920년까지 촬영한 교육 영상을 담아 개화기 교육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개화기는 전통과 신문물이 만나는 시기이면서 일본이라는 세력에 의해 역사가 왜곡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교육도 복잡하고 역동성 있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라진 학생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개화기 교육의 역동성을 교육박물관에서 확인해 보시기를 권유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