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05. 18.
지난 8일에는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할 23인의 최종 명단이 공개됐다. 깜짝 발탁은 없었다. 대부분이 예측 가능한 선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선수 명단은 공개될 때마다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명단은 그 논란의 정도가 예년에 비해 심하다.
최종 명단 23인의 면면은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논란의 가장 큰 핵심은 소속팀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여준 선수들이 상당수 배제됐다는 점이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2013년 6월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소속팀에서 출전을 보장받고, 활약을 보이는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자신의 원칙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의 원칙은 허무할 정도로 쉽사리 깨졌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은 자신의 원칙을 깨뜨렸고,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 소속팀에서 거의 뛰지 못한 선수들이 대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주영, 지동원, 윤석영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2년 전 런던올림픽 당시 홍명보호에 속했던 선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K리그에서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쓴 이명주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아울러 이번 명단 가운데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는 무려 12명. 올림픽 출신 12명이 전부 월드컵에 갈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핵심 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몇몇 선수들의 탈락 논란과 더해져 ‘자기 선수 챙기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빌미를 홍명보 감독 스스로가 제공한 셈이다. 이 외에도 서로 비슷한 부상을 안고 있는 선수지만 어떤 선수는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고, 반대로 어떤 선수는 부상을 이유로 선택 받지 못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이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기준이 될 것’이라는 원칙은 이렇게 깨졌다.
월드컵 최종 명단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된 ‘무너진 원칙’에 대해 홍명보 감독은 제법 큰 목소리로 “내가 원칙을 깼다”고 말했다. 그는 “원칙, 내가 깬 것이 맞다”며 “어떤 선수의 선발이든 모든 분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나도 원칙 안에서 선발했다면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팀을 위해 고민했다. 이 선수들을 데리고 마지막까지 가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변을 했다.
이는 상당히 무서운 발언이다. 스스로 원칙을 깼다고 인정하면서 결국에는 그것이 또 ‘팀’이란 거창한 대상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다. 마지막에는 ‘결과만 좋으면 장땡 아니냐’고 되려 맞받아쳤다. 너무도 당당했던 그의 태도로 미뤄 보건데, 그에게는 원칙이 너무나도 가벼워 보인다.
홍명보 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해 월드컵에 참가한다. 태극마크의 무게는 그 어떤 것보다 무겁고 책임감이 따른다. 그가 부임 초기 원칙을 앞세워 ‘원팀’을 강조한 건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위풍당당하게 ‘원칙’을 깨는 그의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홍 감독의 생각에 동조하듯이 일각에서는 결과로 증명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과정 없는 결과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후임 감독 역시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 내놓으면 상관없다’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이며, 이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는 옳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