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할머니 한 분께서 교무실 앞 복도에서 일대 소란이 일으키신 적이 있었다. 사위가 미술 선생님인데 동료 선생님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그 내연녀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아 후보군이 추려질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 명단에는 어리지만 당찬 성격의 영어 선생님,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시던 가정 선생님 등이 포함되었다.

인간은 1초에 18~24개의 이미지를 보고 판단한다고 한다. 눈 한 번 깜짝일 동안에도 몇 개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인데, 의사판단에 큰 힘을 발휘하는 이미지지만 이미지가 옳은 의사판단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지의 포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동시에 공정함과 정의가 화두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대중의 구미를 당기는 이미지가 정직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이미지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기준은 실체와의 유사성이다. 그 기준에 따라, 유(有)를 무(無)로 호도하는 것과 비(非)를 시(是)로 호도하는 것, 두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유(有)를 무(無)로 호도하는 것’은 마땅히 존재하는 ‘진실’의 얼굴을 감추고 ‘사실’이라는 가면으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언론사가 고용한 월급쟁이로 전락한 기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야당 후보와 500만 표라는 초유의 표차로 당선된 현 대통령에게, 언론은 그의 진짜 경제실력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뿌리 얕은 나무, MB 노믹스의 실체는 앗아가고 노무현‘스럽지’ 않고 경제를 살려줄 것 ‘같은’ 사람을 갈구하던 국민들에게 알맹이 없는 키워드와 이미지만 쏟아냈던 것이다. 비단 4년 전 일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상파 3사는 내곡동 사저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측의 해명과 야당의 의혹 제기만을 그대로 전달할 뿐, 언론사로서 후속 취재의 의물르 저버렸다. 다수의 현실 인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교묘히 주입한 것이다.

‘비(非)를 시(是)로 호도하는 것’은 시(是)로 호도되는 그 대상의 피해가 오래 지속되고 정도가 큰 경우가 많다. 제 1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치는 여러 편의 선전 영화를 통해 유대인을 기생충과 해충으로 비유하고 신흥귀족이 되었다는 우쭐함에 젖어있고, 육욕에 빠져있는 사람들로 묘사했고 국제적인 금권정치의 외피를 두른 유대인 자본주의는 증오하고 타도해야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데올로기가 만든 허구와 당대 가장 매력적인 선전도구였던 독일 미디어 덕분에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가 스며들고 잔인한 인종대청소가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시계를 돌려 1830~40년대 미국 건축에서 종전 이미지와 구조, 그리고 건축방법 사이의 상호관계는 대부분 파괴되고 스타일은 순수한 외관의 문제로 자리 잡았다. 스타일로 장식된 표면이 거래되는 것은 미국 소비사회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구성요소였다. 19세기 산업사회가 교묘하게 풍요를 뽐내는 동안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이라는 본질이 방치되어갔다.

동물행동학자 야곱 폰 웩스쿨에 의하면, 시각을 이용하는 모든 동물들은 자기만의 시각 공간을 설정하는 비눗방울에 영원히 둘러싸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주로 매스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텍스트와 시각적 이미지의 힘으로 자기만의 시각 공간에 골몰하게 되어 같은 정보를 받아들여 같은 판단을 내리는 자신 이외의 대중에 안심하며 살아간다. 텍스트로 조성된 이미지는 프레임을 형성하고, 미디어에서 설정된 그 의제에 대한 정보만 세상 속으로 흘려들어갈 뿐이다. 태풍의 눈에서는 바람도 비도 없는 맑은 날씨지만 그 눈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엄청난 비바림이 친다. 1초에 4개의 이미지만을 보고 판단하는 달팽이보다 인간이 진실을 잘 가려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이유다.

종편의 개국과 예산안 심사, 더 나아가 총선과 대선 정국에 살아갈 우리는 매체와 이미가 몰고 오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거센 바람을 맞게 될 것이다. 보통 일상생활 속에서 표리부동한 사람을 만날 경우 ‘깬다!’는 표현을 하는데, 우리 주위에 산적해 있는 표리부동함을 통해 진실에 ‘깨어’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늦게 도착하곤 하던 실체의 열차를 마냥 기다리고 있지만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문장에도 물음표가 달리지 말아야 할 당위성은 없다.

며칠 후, 미술 선생님은 그대로 재직하셨지만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나간 분은 고상함, 우아함, 고고함으로 표현되곤 하던 수학 선생님이셨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