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여 기서 두 마리 토끼는 성장과 안정을 의미할 때도 있고, 비슷한 맥락으로 고용과 물가를 의미할 때도 있다. 고용을 늘이고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을 증대시키 는 등 경기부양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기가 상승하면 당연히 물가도 상승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긴축 정책을 선택하면 경기가 위축되고 고용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부는 언제나 어느 정도까지 인플레이션을 감수할 것이며 또 어느 수 준까지 실업을 용인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다. 그렇다면

실업과 인플레이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일까? 물론 정답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때 그때 다르다, 즉 상황에 따라서 때로는 인플레이션이 실업보다 더 심각한 경제문제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서는 그 반대이기도 하다. 우스개소리로 한마디 하자면, 지금 실업 상태에 있거나 조만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실업이 더 심각한 문제이고, 안정된 직장과 소득을 가지고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사람들에게는 인플레이션이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날씨를 예보 할 때 불쾌지수가 얼마이다하고 이야기한다. 다 아시다시피 불쾌지 수란 온도와 습도를 합한 숫자이다. 경제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지표가 있는데, 미국의 경제학자 오쿤이 만 들어낸 경제고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가 바로 그것이다. 경 제고통지수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을 합하여 계산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업률을 낮추려면 물가상 승률이 높아지고, 물가상승을 억제 하려면 실업률이 높아지는 상충관 계를 고려해서,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바로 경제고통지수이다.

최근에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고 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가 8.3%로 경제개발협력기구 즉 OECD 회원국 가운데 22위라고 한다. 요즘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 들 가운데 스페인이 24.2%로 1위이고, 그 뒤를 이어 그리스가 19.5%, 슬로바키아가 17.0%, 그리고 미국 은 12%다. 따라서 이런 수준이면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문제는 고통지수가 상승하는 속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2009년 6.4%, 2010 년 6.7%로 조금씩 상승하다가 2011 년 들어서는 급상승세를 타면서 5 월 7.3%, 6월 7.7%, 7월 8.0%에 이 어 8월 8.3%를 기록했다. 1월부터 8 월까지의 고통지수를 평균으로 계 산해도 8.1%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의 7.8%보다 높다. 한 마디로 올해 들어 우리경제가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 국가들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고통지수가 더 빠르게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물가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실업률이 고통지수가 상승한 주원인으로 조사된 반면, 우리나라만은 예외적으로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수 상승을 높인 주된 요인이다. 금년 들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5%로 OECD 회 원국 가운데 터키의 5.5%를 제외하 고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물가 문제가 이토록 심각해진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보다 정부의 물가대책 실패이다. 정 부는 당연히 국제 유가의 동향이나 농산물 수급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 하고 있다가, 언제라도 필요한 대책 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거시경제적 대책 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기껏 가격이 비싼 주유소 500개를 지정해 회계장부를 들여다보겠다는 대 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주유소를 잡 는다고 물가가 잡히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물가가 너무 빠르게 상승하다 보니 잠시 뒷전으로 밀려 났지만 고용 문제 역시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반기 들어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 대로 낮아졌으나 1분기까지만 해도 4% 대를 기록하 였다. 실은 4%라는 수치마저도 우리가 주변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 실업률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다. 62만명이 넘는 취업 준비자와 아예 취업을 포기한 취업 단념자들을 모두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8% 대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실업의 위험에 더 취약한 경제적 약자층들이다. 가령 청년실업자는 31만명을 넘으며 실업률은 8~9%에 이른다. 전체 실업률의 두 배가 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공식통계이며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청년실 업률은 20%를 넘는다. 여성, 노인, 장애인 등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런 소외계층들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약자층일수록 실업의 위험에 더 취약하기 마련이다. 가령 기업이 정리 해고를 할 때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먼저, 고위직보다 하위직을 먼저, 기술직보다 단순노무직을 먼저 해고하기 마련이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 주민들이 아닌 서민들일수록 체감 실업률이 높은 이유이다. 이래 저래 경제고통지수가 높을수록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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