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경계를 뛰어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고생만 하다보면 인생이 성말라지고 사람관계는 팍팍해지곤 합니다. 고생을 통해 스스로 이 고생의 의미를 깨치고 자기 삶을 펼쳐나간다면 좋겠지만 대개는 그러지 못하죠. 고생 때문에 도리어 생각의 폭은 좁아지고 짜증과 악다구니로 나의 싱그러움을 갉아먹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면 고달픈 삶을 잊고자 TV와 인터넷 같이 ‘시간과 생각을 잡아먹는 장치’들에 사로잡힌 채 청춘을 흘려보내게 됩니다.
 이런 고생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기에 모조리 비슷하게 고생하며 살아가고,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줄 ‘아편’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곤 하죠. 어떤 ‘홈’같은 게 느껴집니다. 자기 인생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드뭅니다.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남들도 다 나와 똑같은 걸 한다면 우리는 홈 파인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날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는 승리와 패배라는 낱말은 사람들이 어떤 홈에 들어가 있는지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기고 지는 데 엄청나게 민감합니다. 승패라는 단어가 헤프게 한국사회에 나돈다는 것은 이김과 짐을 가르는 습성이 한국에 흥건하다는 뜻이죠. 이런 승패의 판에선 이기는 것에만 손뼉을 치고 지는 걸로 ‘믿어지는’ 일은 어떤 것도 영 마뜩찮게 됩니다.
 어떤 규칙에 따라 편이 나뉘어 시합을 할 때 이기고 지는 게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이김과 짐을 매기는 일이 숱합니다. 승리나 패배란 꼬리말을 가져다 붙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개고생을 하고 세상맛을 톡톡히 보며 혼쭐나다가 자리를 잡았다면 그것은 ‘승리’인가요?
 더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이기는 일만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지더라도 싸워야 하는 때가 있죠. 대들어야 할 때, 용기 있게 일어나도록 가르치기보다는 질 거 같으면 아예 하지 말라며 남들처럼 살라는 홈에 죄다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규칙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홈 파인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 삶이 늘 낯설고 휑뎅그렁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설사 운 좋게 돈 많은 부모를 만나 유명대학에 들어가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멋진 차를 끌고 통장에 돈이 쌓여도 뭔가 말할 수 없는 헛헛함에 시달리기 마련이죠. 그 느낌을 참을 수 없어 다시 권력을 향해, 돈을 위해 내달리지만 돌아오는 건 잠깐의 짜릿함과 커다란 허전함 뿐입니다.
 홈 파인 대로 온 사람은 자기 인생을 책임지면서 산 적이 한 번도 없는 셈입니다. 평생 돈이나 감투를 쫓아 흘러온 거니까요. 삶에 보람이 없을 수밖에요. 뒤늦게 가슴을 치면서, 아뿔싸,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왜 나만 불행하냐며 하소연하는 이들이 세상엔 쌔고 쌨습니다. 까딱하면 부모를 탓한다든지, 친구에게 잘못을 돌린다든지, 사회를 욕한다든지 남에게 자기 불행을 떠넘기죠. 홈 파인 대로 흘러온 사람들은 인생을 자신이 바람대로 일궈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한숨을 쉬게 됩니다.
 이런 홈 밖으로 나가는 과정이 ‘혼’을 갖는 길입니다. 혼은 특별한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갖는 보편성입니다. 누군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고픈 마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며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혼이니까요.
 그러나 이제 이런 혼은 사치이거나 예민한 사람들이나 벌이는 ‘합리성 없는’ 마음씀씀이로 여깁니다. 보슬비가 내려도, 제비꽃이 피어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는 ‘콘크리트 인간’들이 지구동네를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을 에워싼 권력들에 ‘저항’해야 합니다. 이 혼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불쑥 땅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손쉽게 나타나지 않으니까요. 홈 밖으로 나가려고 온 힘을 다할 때, 비로소 싹이 돋아나듯 생겨나죠. 여태 해본 적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그것이 며칠에 그칠지언정 그 며칠이 얼마나 귀한지요. 구정물이 고인 갯밭을 바득바득 기면서도 하늘을 쳐다 본 사람과 끽 소리 못하고 눈을 내리깐 사람은 운명이 달라집니다. 청춘의 값진 며칠은 삶을 새롭게 싹틔우는 씨감자가 됩니다.
 청춘은 자신에게 ‘공구리’를 붓는 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시기이며, 자신의 영혼을 지펴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기가 애를 써서 이뤄낸 삶과 세계의 만남에서 혼이 빚어집니다. 나의 욕망과 나의 생각, 그리고 내 일상생활과 사람관계에서 피어나는 것이 혼입니다. 영혼은 자기에게 있지만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속살이자 세상에서 받은 상처에서 돋아난 새살입니다.
 인생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며 자신에게 닥치는 폭풍우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고자 세상에 덤비는 과정 그 자체라는 걸 느낄 때, 혼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 부디 자신의 혼을 내팽개치지 말길. 오늘도 가슴 왼쪽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귀 기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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