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5. 6.

세계사는 자유의식의 진보 과정이다(Der Weltgeschichte ist die Fortschritt im Bewußtsein der Freiheit). 헤겔이 한 말이다. 헤겔은 그의 전 철학 체계에서 자유가 어떻게 나타나고 실현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헤겔의 사유를 비유한다면 ‘자유 존재 증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 그러하듯이 자유의식의 출현과 전개, 발전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논리학에서 헤겔은 자유의 존재론적 증명을 시도하고 있다. 자연 철학에서 헤겔은 자연 안에 깃든 정신이 어떻게 자유의 의식으로 깨어나는지를 해명한다. 정신 철학에서 헤겔은 자유가 정신의 운동 원리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객관적 사회 제도 안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유’는 헤겔 철학의 중심이 된다.
헤겔에게 있어 자유개념의 운동은 존재의 가장 낮은 존재로부터 자유를 향해 상승하는 정신의 필연적 운동이다. 이것은 자연을 지배하는 낮은 차원의 필연성이 정신의 영역에서 자유를 향한 고차적 필연성으로 구현됨을 의미한다. 존재의 진리는 생명이다. 존재는 자신의 자기운동 과정에서 무생명으로 분열된다. 생명은 다시금 식물과 동물로 구분된다. 정신의 운동은 식물보다 동물에서 한 단계 더 고차원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의 원리를 실현한다. 주체의 자기운동의 특징은 자기원인 에 의한 자기관계다. 주체는 대상과의 모순 속에서 대상을 자기화하는 운동을 행한다. 이것은 충동과 욕구이며, 주체는 외적 대상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기동일성을 관철시킨다. 이러한 주체의 운동은 헤겔이 말한바 ‘동일과 비동일의 동일’의 비밀을 이해하는 열쇠다.
자유를 향한 정신의 운동은 인간에게 역시 일어난다. 인간의 정신 운동은 동물의 것보다 한 단계 고차원적인 것이며, 인간의 정신 안에서 의식의 운동으로 발전한다. 인간에게 있어 의식은 ‘자연적 의식’과 ‘자기의식’으로 분열한다. 자연성을 탈피하지 못한 인간의 의식은 충동과 욕망으로 감각 안에 자리한다. 인간은 자연성 뿐 아니라 정신성을 공유하는 모순된 존재다. 이러한 모순이 가장 명료한 의식의 형태로 자각된 존재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과 대립은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의 원천이 된다. 자기의식적 자기관계에서 비로소 인간의 자기의식은 자기의식과 대상의식으로 분열한다. 두 의식은 인정투쟁 상태에 돌입하며, 그 결과 두 의식은 상호인정하지 않을 때 모두 존립할 수 없음을 인지한다. 자기의식과 대상의식의 관계는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개인과 개인, 자기와 타자 등 여러모로 상호의존하며 모순되는 관계들을 반영한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자유의지의 전개를 3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추상성, 도덕성, 인륜성이 그것이다. 추상법에서 자유의지의 운동은 인격으로 표현되며, 이 인격의 소유를 통해 자신의 현존재를 실현한다. 자유의지의 규정 작용 역시 3가지 단계로 나타난다. 첫째는 무규정성으로서 추상적 자아를 고수하는 These의 단계다. 둘째는 자신의 자유를 자의와 자율로서 실현하는 Antithese의 단계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타자 안에서 자기에 깃들어 있음(an und für Sich)’으로 표현되는 Synthese의 단계다. 자유의지의 자기운동은 자기규정, 자기결정의 운동이다. 이것은 의지가 선택과 결정의 능력을 행사하는 단계의 자유다. 인간의 본질적 본성은 그가 사유한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선택과 결정으로서 인간의 자기규정이 그 자신의 본질적 본성인 이성의 법칙과 일치할 때에만 그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자유 개념의 운동은 자율로서 이행된다.
자율로서의 자유는 칸트의 도덕적 자유의 최고 단계에 해당한다. 헤겔은 칸트적 도덕과 사회계약론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인륜의 자유 개념을 정초했다. 칸트의 도덕은 당시 공리주의적 원자론적 자유관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반발이었다. 헤겔은 칸트가 의지와 자유를 일치시키고자 한 점, 그리고 의무 안에서 자유를 발견하고자 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 견해를 보인다. 반면 근원적으로 칸트는 분열된 사회와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참다운 자유의 원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칸트는 ‘타자’의 문제를 배재하면서 형식주의적 도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칸트의 도덕적 자율과 순수의무는 ‘공허성’을 대가로 한 것이다. 칸트의 순수의무가 추구하는 선은 위선으로 전락하고 만다.
헤겔의 자유를 향한 정신의 운동에서 가장 독특한 표현은 타자(Andersein)에 관한 것이다. 그는 ‘타자 안에서 자기에 깃들어 있음’, ‘타자 안에서 자기를 고수함’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헤겔은 타자를 배재하고서는 자유로운 주체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타자는 외부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힘으로써, 인간을 부자연스럽게 하는 제도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타자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헤겔의 철학은 타자로부터의 도피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자유관과 칸트의 자유를 추상적 오성으로 규정한다. 자유는 타자를 조건으로 타자 안에서 나를 실현하는 것이다.
추상적 자유 개념의 운동은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접목할 수 있다. 헤겔은 시민사회의 주체인 개인을 사인으로 규정했다. 사인은 자의로서의 자유에 머물러 있는 자유의지다. 공적인 것을 수단으로서 간주하는 사인에게 있어 의무는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으로, 권리는 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사인에게 있어 공동체는 자신과 동일시 될 수 없는 영원한 타자다. 헤겔은 사회계약론을 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한다. 사회계약론적 자유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계약에 기반한 공통의지간의 자의적이고 오성적인 결합에 불과하다. 하지만 헤겔에게 있어 국가와 혼인 등 인륜적 문제는 계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의무와 권리, 보편과 특수의 통일은 인륜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
자유개념이 도달하는 필연성은 자신과 타자의 진리가 우리임을 보여준다. 참다운 자유는 자신이 타자를 또다른 자신으로 인정함으로 달성되는 Synthese로서의 자유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과 자유의 존재론적 구조는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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