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그 연유를 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기억이 닿는 곳에서부터 늘상 그래왔기에 현재의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연함의 기원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낯선 것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가 지낸 근 100년간은 우리 조상들을 둘러싼 지극히 사소하여 당연시 해왔던 것들이 변하거나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시기였다.
요즈음 여러 매체나 일상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개는 허스키, 코카스페니얼과 같은 애완용으로 기르기 위한 외래종이나 여러 종이 교접한 잡종이다. 굳이 우리나라의 토종개를 떠올리라면 진돗개나 풍산개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구전 민요나 ‘춘향전’ 등의 소설, 조선시대의 장승업과 김홍도가 그린 작품과 그린 이를 알 수 없는 민화들에는 삽살개(삽사리)가 등장한다. 그만큼 그 당시 삽살개는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삽살개는 지금으로부터 6, 70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남부 지방 민가에 가장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삽살개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급격히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 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북방으로 진출하면서 겨울을 날 수 있는 모피가 필요했다. 총독부는 ‘개 가죽 공출령’을 내리고 ‘조선 원피 주식회사’를 설립해 일본 개를 닮은 진돗개와 풍산개를 제외한 개들을 들개라는 명목으로 잡아 도살했다. 기록에 의하면 대동아 전쟁 중 연간 30~50만 마리의 조선 개들이 도살당해 가죽이 벗겨졌다.
이 와중에 삽살개는 방습, 방한에 좋은 긴 털을 가졌다고 하여 멸종 직전까지 잡혔다. 현재 시골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삽살개는 대부분 잡종이다. 순수한 삽살개 종은 6·25 직후 경북대 교수진의 노력으로 보존되어 삽살개의 개체가 적게나마 유지되고 있다.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돼지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변한 경우이다. 1935년에 이훈구라는 학자가 쓴 ‘조선농업론’에 따르면 당시 돼지는 체구가 아주 작아 다 큰 것이 25kg밖에 되지 않는데다 발육이 매우 느렸다고 한다. 털빛은 검은색이며 요즘 개량종과는 달리 지방 함량이 적고 배가 아래로 축 처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돼지는 거의 멸종 상태다. 돼지 재래종을 요즈음 접할 수 없는 이유는 고기의 ‘생산성’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국가차원으로 덩치가 큰 서양의 바크셔, 요크셔종과의 교배를 적극 권장했다. 외래종과 교잡종 돼지는 고기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했지만 점차 경제성 때문에 민가에서도 많이 기르게 되었고 결국 현재 가장 널리 사육되는 것은 거대한 흰색 요크셔 돼지 혹은 그 교잡종이 되었다.
동물에서 식물로 넘어가 보면 변한 것이 많다. 배는 우리의 전통과일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문헌에 지속적으로 배에 관한 기록이 있어 배는 우리와 오랜 기간 함께한 작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배는 현재 돌배라고 불리는데 크기는 탁구공만 한데다가 껍질이 두껍고 단맛이 적어 우리가 알고 있는 배와는 아주 다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는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으로, 1906년 서울 근교 뚝섬에 세워진 원예모범장에 도입된 후 재배된 것이다. 원래 있던 돌배보다 크고 맛이 있어 돌배를 제치고 대중적인 과일이 되었다. 사과 또한 본래는 주먹만한 크기이나 배와 마찬가지로 원예모범장에 외래종이 들어와 대중화된 경우이다.
- 기자명 김택 기자
- 입력 2018.10.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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