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있었던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다소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따. 현 정부의 실정과 '돈 봉투' 사건, 대통령 측근 비리, 민간인 불법사찰 등 집권당에 불리한 상황임에도 새누리당은 상당히 선전하여 국회의 제1당이 됨은 물론 과반수 이상의 의석까지 확보하는 결과를 거두었다. 반면 현 정부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승부하던 민주통합당은 제1당이 되는데 실패하였다.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권 심판' 이상의 메시지를 내걸지 못했다. 반면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은 이명박 기존 우파노선에서 차별화된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두 당의 비례대표 선거 공보집만 봐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의 공보집에는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과학기술투자, 장애인 정책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공보집에 나와 있는 내용은 주로 정권심판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고 김근태 의원의 유언과 같은 내용이었다. 고인이 된 정치가들에 대한 향수와 정권심판 정서만을 자극하려는 느낌이 강했고, 앞으로 한국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공약은 나와 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로부터의 차별화를 통해, 새누리당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실망하여 등을 돌렸던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과 일부 중도적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얻는 데 성공했다. 또한 노인층 및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확실히 결집시켰다. 부산과 경남 지역의 '문재인 바람'을 차단시키고 수성에 성공했으며,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서울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어느 정도 작동하여 민주통합당이 승리하였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매일매일 치열한 경제 상황에 직면해야 하고, 다양한 가치가 유입되어 거대 담론에 대한 논쟁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에, 개혁을 바라는 성향이 높을 수 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의외로 고소득층에서 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높았다는 설문조사가 있었으며, 서울 송파구와 양천구, 경기도 분당과 같은 중·상류층 거주지역에서 새누리당은 접전 끝에 미미한 표차로 겨우 승리했다. 중산층 이산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부 비판 여론이 높았던 것이다.
 반면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이곳의 삶은 대도시와 달리 비교적 변화가 적으며, 주민들 역시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의 논쟁은 이 곳 사람들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지역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이나 세종시 같은 지역 개발 현안이다. 박근혜는 약속한 바를 지키고(세종시 원안 고수와 같은), 안정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을 것이란 이미지를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반면 통합진보당과 함께 민주통합당이 주장했던 한·미 FTA 재검토나 제주 해군기지 취소와 같은 바들은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갖는 안정추구형 유권자들은 대도시에도 있어서 대전이나 인천 같은 곳에서도 새누리당이 절반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정권심판론이 서울과 그 주변에서만 효과를 발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총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아직까지도 많은 한국인들은 '국가 권력의 제한'보다는 '강력한 국가'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새누리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제주 해군기지를 국방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최근 매우 부실해진 경찰력의 강화를 통하 엄격한 법 집행을 바랄 것이다. 또한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 민주화'(재벌 견제)를 함에 있어서도 좀 더 힘과 기득권을 갖고 있는 우파 세력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에 맞설 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의 '수권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새누리당이 과감하게 '경제 좌클릭'을 시도하자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기존 정책들은 새누리당과의 차이점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노동권 문제나 교육, 보육과 같은 사안에서 차별화된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야권을 확실한 대안을 갖고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며, 안정감이나 품위도 없는(김용민의 막말 파문과 관련하여) 세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통합당은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처럼 거대한 담론과 가치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보다는 경제와 복지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모두가 외치는 상황에서는 이 분야에서는 좀 더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내놓았어도 괜찮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또한 4대강 사업이나 원자력 발전의 부작용과 같은 환경 관련 사안도 쟁점화되지 못했다. 이전 글에서 밝힌 대로 민주통합당이 융커들의 정당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친시장적, 경제 개발위주의 정책 기조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인 것일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뒤집지 않았던가.) 역시 민주통합당은 지금의 어정쩡한 상태를 벗어나 중도우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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