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 해방의 도구이지 착취의 도구가 아니다"
몇 십 년 전부타 기타는 우리 대학생에게 가까이 있었다. 어느 대학이든지, 대학가를 거닐다 보면 기타를 뒤로 매고서 걸어가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밴드 없는 대학 공연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만큼 기타는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가 됐다. 그러나 그 기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이인근 콜텍노조 지회장은 "말이 좋아 만 5년이고 1900일이지... 이미 저희들은 가정에서 가장으로서의 위치와 함께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위치도 상실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박영호 사장이 운영하는 콜트 사와 콜텍사는 세계적인 기타 수출업체다. 1979년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하여 인천 부평에는 전자기타를 만드는 콜트 사를 세웠고 나중에 계룡시에 통기타를 만드는 콜텍 사를 세웠다. 30년이 지난 지금, 박영호 사장은 천억 대의 재산가로 한국의 부자 순위 120위에 올라 있고 콜트 사와 콜텍 사는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 30%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전자기타 업체인 미국의 펜더 사도 콜트 사에 연 500억 원의 기타를 주문할 정도로 콜트악기는 해외에서도 유명해졌다.
그러나 콜트 사 · 콜텍 사의 이면에는 기타 몸체를 깎을 때 나오는 나무분진과 유기용제로 쩔은 공기 안에서 숨 쉬며 일하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런 노동자를 박영호 사장은 2007년에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쫓아내 버렸다. 이때 해고된 노동자의 수는 56명이다. 수요 물량이 감소되어 콜트 사와 콜텍 사에서 몇 년간 적자를 봤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이인근 지회장은 "사측의 주장이야말로 억지 주장이며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십 수 년동안 70억에서 100억이 넘는 순이익을 내는 회사가 어렵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 콜트 사와 콜텍 사가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고 부채비율은 15%내외이며, 현금 유동성도 아주 양호한 건실한 알짜배기 기업이다"라며 "콜트, 콜텍의 폐업과 정리해고는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무노조 경영을 위해 기획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해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회사 측이 부당해고를 했다는 판정을 받아냈지만, 회사 측의 불복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끝내 복직되지 못했다. 그 사이 회사 측은 국내의 생산물량을 생산비가 저렴한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현지 공장으로 돌려 운용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2008년에 한 차례의 정리해고가 또 일어났고, 회사 측은 공장을 폐쇄했다.
그렇게 해고 노동자들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회사 측의 정리해고와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인사동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는 한편,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수십 미터 송전탑에 올라 고공단식 농성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동호 씨가 분신하여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 측의 입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원정투쟁이었다. 1년에 4번씩 미국(NAMM SHOW), 독일(MUSIC MESSE), 일본(요코하마 악기 박람회), 중국(상해 악기 박람회)에서 개최되는 악기 박람회를 찾아가 바이어와 소비자인 뮤지션들을 직접 만나 콜트 사와 콜텍 사의 비인간적인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해외 원정투쟁을 통해 해외의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열었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원정 투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콜트 사에 가장 많은 오더를 발주하는 펜더 사에서 자체 조사를 하도록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이인근 지회장은 "미국의 락 그룹인 RATM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가 미국의 기타 전문 제조업체이자 콜트 사 · 콜텍 사에 가장 많은 오더를 발주하는 펜더 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고 만남을 주선해 줬다"고 말했다.
국내와 국외를 아우르는 투쟁을 이어나가면서 노조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하거나 식당 아르바이트,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벌이를 하지 않고 투쟁을 하는 8명의 조합원은 다른 직업을 얻은 조합원의 임금에서 십시일반씩 걷어 준 돈과 손수 매실고추장과 장아찌를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으로 버텨왔다.
그렇게 1848일을 보내고 나서야 올 해 2월 23일, 콜트 사의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콜트 사 노동자만의 기쁨이었다. 콜트 사 노조 측이 승소한데 반해, 콜텍 사 노조 측의 판결은 파기 환송되었기 때문이다. 콜텍 사가 매년 당기 순이익을 내기는 했지만 대전의 콜텍 사 공장이 2004년 사업연도부터 매년 영업 손실을 냈고 생산량도 감소 추세를 보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이인근 지회장은 "똑같은 사안을 재판부별로 엇갈린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의아함과 함께 이런 것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라고 말했다.
현재 콜텍 사의 건은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되어 심리를 기다리고 있다. 콜텍 사의 노조원들은 매일 본사와 낙원상가, 콜텍문화재단 앞에서 1인시위와 선전전,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집중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홍대 앞 클럽 '빵'에서 인디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인근 지회장은 말한다. "지난 5년 동안 저희 조합원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해 왔습니다. 그 신념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습니다. 지금의 이 고통과 어려움 은 승리의 밑거름이 되어 크고 알찬 열매로 돌아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