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더 이상 4할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가? 1871년 시작된 미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건 1941년 0.406을 친 테드 윌리엄스 이후, 일본 프로야구에선 아직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에선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 선수가 0.412를 친 뒤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두고 야구팬들의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야구계에서는 '타자의 기량 약화', '투수의 전문화와 기량 향상', '타자에게 불리한 룰과 심리적 압박감'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4할 타자의 멸종을 과학의 연구 주제로 끌어올린 사람은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였다. 당시 야구계에선 4할타자가 사라진 이유가 '타자들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 주장에 반론을 펴기 위해 굴드는 일단 야구연감에서 1900년부터 현재까지의 타율 기록을 모두 뽑아 모든 타자들이 친 타율의 표준 정규분포 곡선을 년도 별로 그려 보았다. 그러자 표준 정규분포 곡선의 꼭지점(그 해의 평균 타율)은 매년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즉 리그를 구성하는 타자들의 전반적인 배팅실력은 매년 향상되었다. 또한 표준 정규분포 곡선의 폭은 매년 조금씩 좁아졌다. 즉 리그 최고의 타자와 최악의 타자 사이 실력차는 매년 줄어들었다. 요약하자면 타자들의 실력은 꾸준하게 상향 평준화 되어 왔다.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이렇다. 첫째, 리그 평균타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타자의 수준 하락이나 투수의 수준상승으로 설명할 수 없다. 둘째, 야구라는 생태계는 시간이 갈수록 최고와 최저 사이의 폭이 줄어들며 안정화된다. 거듭된 경쟁이 최고 수준의 선수들만을 리그에 남기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리그에 살아남은 선수들의 능력은 상향평준화된다. 인간에게는 생리적·물리적  한계가 있어서 능력이 무한히 상승할 수는 없고 언젠가는 벽에 부딪치게 된다. 최고의 선수들이 벽에 부딪친 후에도 그저 그런 선수들은 계속해서 더 뛰어난 선수들로 바뀐다. 왼쪽에서는 경쟁이 타자들을 오른쪽으로 밀어붙이고(즉, 뒤떨어진 타자를 퇴출시키고), 오른쪽에는 인간의 한계라는 벽이 있다. 그래서 야구 초창기 타자들의 타율 분포 곡선은 완만한 반면, 현대 타자들의 타율 분포 곡선은 양쪽에서 눌려 뾰족하다. 정규분포 곡선의 중간값이 2할6푼으로 같기 때문에, 오른쪽·왼쪽 꼬리가 짧아진 현대 야구에서 4할이라는 '먼 곳'에 도달할 확률은 극적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굴드가 말하는 '안정화'다. 물론 깨질 수 없는 기록이란 없다. 4할 타자는 또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4할 타자의 출현이 그만큼 희귀해졌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굴드의 가설이 한국프로야구에도 적용될까? 이를 검증하기 위하여 과학콘서트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가 트위터를 토앻 구성한 '백인천 프로젝트' 연구팀을 구성하였다. 연구팀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기록 등을 토대로 최근 30년 동안의 국내 프로야구의 투타 기록 28만 건을 통계화했다. 이를 통해 30년간 타자의 기량을 나타내는 타율은 연평균 0.3리 상승했으며, 출루율과 장타율도 해마다 0.6리와 1.1리씩 좋아졌다. 반면, 투수의 9이닝당 삼진 수는 해마다 조금씩 올라갔찌만 평균자책점과 이닝당 출루 허용률도 상승해 투수 기량은 해마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프로야구에서 야구의 신에게 다가갔던 선수들을 찾아보자. 프로야구 출범 첫 해부터 작년까지 규정타석 이상 출전 선수들의 연도별 평균타율을 그래프로 그려 본다. 또한 각 해의 수위타자를 제외하고도 그래프를 그려 본다. 그래프를 살펴 보면 시즌 최고타율과 수위타자 제외 평균타율의 차이가 9푼 이상인 해는 모두 다섯 번 나타났다. 첫 해인 1982년과 1983년, 1985년, 1987년, 그리고 1994년이다. 차이가 0.134나 나타났던 1982년의 수위타자는 바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4할 타자 백인천 선수이고, 1994년은 이종범 선수이다. 그리고 1983, 85, 87년 세 해의 수위타자는 놀랍게도 한 선수였는데, 바로 장효조 선수이다. 장효조 선수는 통산 네 번 수위타자를 차지했고(1983, 85, 86, 87). 그 가운데 세 번이나 나머지 선수들과의 격차를 9푼 이상 벌렸다. 다른 재미있는 현상은 수위타자 제외 효과가 해가 갈수록 줄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위타자와 나머지 타자와의 차이가 해가 갈수록 적어진다는 뜻이다. 시스템이 안정된다는 논문의 논의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결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굴드 가설'이 한국 야구에도 적용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논문을 작성한 김효일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박사과정생은 "한국 프로야구는 30년간 전반적인 시스템이 발전해 안정화 되면서 타육 4할의 '튀는 타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라며 "백인천 선수는 출범 첫해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등장한 외부 유입이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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