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글쓰기, 말랑말랑 독서
개강 후에 발행된 지난 두 호에서는 읽기 모형으로 알려진 SQ3R과 이것을 변형한 PQ4R을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형을 완벽하게 적용하려고 하는 것보다 독자 자신의 특성이나 환경에 맞게 수정하면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글을 읽기 전에 그 글을 개관해 보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효과적인 읽기 방법으로 알려진 이러한 모형을 어떻게 머릿속에 체계화하여 기억할 것인가를 다루어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이번 호의 주요 내용은 읽기 모형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능한 독자는 SQ3R이든 PQ4R이든 자신만의 독창적인 읽기의 방법, 즉 절차적인 읽기 모형을 가지고 있다. 능숙한 독자에게 '당신은 책을 어떻게 읽는지', 혹은 '당신은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재촉하듯 물으면 명확한 대답을 속 시원히 내놓지는 못한다. 그것은 그가 갖추고 있는 읽기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고 글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실현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유능한 독자는 자신만의 읽기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말로 잘 설명해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능숙한 독자에게 묻듯이, 미숙한 독자에게도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물을 수 있다. 물론 미숙한 독자도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아마도 손톱만 물어뜯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숙한 독자가 대답을 못 하는 이유는 그의 머릿속에 읽기 방법이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읽기의 힘이 부족하고 읽기의 효과가 낮은 것도 적용할 수 있는 읽기 방법이 머릿속에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수지에 물이 없으니 농번기가 되어도 논에 물을 댈 수가 없는 것이다. 미숙한 독자가 능숙한 독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능숙한 독자들이 머릿속에 읽기 방법을 체계적으로 갖추어 두고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형태의 읽기 방법을 내면화해 두어야 한다.
Robinson과 같은 독서 교육 전문가들은 머릿속에 읽기 방법을 체계적으로 저장해 두지 못한 미숙한 독자를 돕기 위하여 유능한 독자들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또는 그러한 것으로 밝혀진) 절차 모형을 개발하여 그것을 따라 할 수 있도록 제안하였다. 그것이 바로 SQ3R이나 PQ4R과 같은 읽기 모형이다. 유능한 독자는 이러한 읽기 모형을 제시해 주지 않더라도 내면에 형성되어 있는 읽기 방법을 적용하여 대학교재를 능숙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미숙한 독자는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독서 교육 전문가들은 미숙한 독자들이 따라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 갖추어야 할 그 읽기 모형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시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미숙한 독자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읽기 모형을 독서교육에서는 '절차적 촉진자'라고 부른다. 영어로 된 학술 용어를 직역하여 쓰다 보니 좀 낮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좀 쉽게 생각하면 읽기가 이루어지는 절차를 도와줌으로써 그 과정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장치라는 뜻이다. 초·중 ·고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독서 교육은 대부분 이러한 절차적 촉진자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머릿속에 읽기 방법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려면, 그래서 능숙한 독자로 성장하려면 이러한 절차적 촉진자, 즉 읽기 모형을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난 호 끝자락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 기본 모형을 숙달해 두지 않으면 독자 자신의 특성이나 환경에 따라 읽기방법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하는 것이 어렵다.
읽기 모형을 숙달할 때에는 유능한 독자를 스승으로 삼아 그의 읽기 과정을 따라하면서 그 절차를 익히고 각 과정에서 행하는 세부적인 활동을 모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생활관 주변이나 강의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스승으로 삼을 만한 동료나 선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하지만 후배 중에도 있을 수 있다. 찾았다면 정중하게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읽기 과정을 분석하고 모방하고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안내한 읽기 모형을 활용하여 스스로 연습해 보는 것이 좋다. 읽기 모형을 숙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서 노트나 A4와 같은 백지에 읽기 모형을 절차가 잘 드러나도록 그려 놓고 적용해 보는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연습한 후에 읽기 모형을 그려 두지 않고서도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거나, 의도적으로 기억해 내지 않고서도 그 과정을 수행할 수 있으면 숙달의 일차적인 조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후에도 망각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읽기 모형을 절차적 촉진자로 삼아 연습할 때에는 짧은 글, 우리 대학 학생들이라면 평균적으로 2면 이내의 짧은 설명문을 자료로 삼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길이가 벅차다면 분량이 더 적은 글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연습을 하면서 글의 길이를 점차 늘려갈 수 있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대학 교재를 읽을 때에는 항상 눈동자가 구르면서 글 전체를 훑어볼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소제목을 통한 주요 내용의 예측, 반복되는 핵심 단어의 발견, 사진이나 그림의 파악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면 숙달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젠 실제로 글을 앞에서 놓고 연습해볼 차례가 되었다. 자. 함께 시도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