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연기 · 노래 · 연주를 모두 실연
서울 종로의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지난달 20일부터 오는 29일까지 뮤지컬 공연 '모비딕'이 개최된다. '모비딕'이 처음 제작되어 서울에서 초연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다. 금년에는 초연작에서 약간의 수정과 보강을 거친 개정된 버전으로 다시 서울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모비딕'은 허먼 멜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인데, 출연하는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와 노래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까지 모두 수행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로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 '액터-뮤지션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는 '모비딕'이 처음이다.
'모비딕'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엽, 장소는 영국이나 미국 어딘가로 추정되는 항구와 고래잡이배 피쿼드 호다. 사실 '모비딕'은 전설적인 거대한 흰 고래의 이름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유유히 대양을 돌아다니면서 그를 잡으려는 인간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악명높은 고래다. 피쿼드 호의 선장 에이험은 모비딕과 딱 한번 맞딱뜨렸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되는데, 그 후 모비딕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다시 찾으면 모비딕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로 치면 1인칭 관찰자 정도라 볼 수 있는 청년 이스마엘은 평범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좀 더 재미있는 인생을 경험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고래잡이배에 승선하고자 하는데 하필이면 찾게 된 배가 모비딕을 감히 추적하고자 하는 피쿼드 호이다. 그는 피쿼드 호의 항해와 몰락을 지켜보는 관찰자적 인물로서 극의 나레이터같은 역할을 맡는다.
아프리카 또는 태평양 원주민 부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작살잡이 선원 퀴케그는 이 연극의 재미를 살려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아직 영어가 완벽하지 못한(물론 실제 대사는 한국어로 진행되지만) 퀴케그는 처음 만난 이스마엘과의 의사소통에서 가끔 엉뚱한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금새 친해져 친구가 된다.
그 외에 고래잡이를 통해 일획천금을 꿈꾸는 중견 선원 플라스크, 2등 항해사 스텁, 합리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1등 항해사 스타벅 등이 배 위에서 함께 생활하는 등장인물들이다.
뮤지컬은 모험거리를 찾아 고래잡이배에 오르는 선원 이스마엘의 독백과 피아노 독주로 시작된다. 이스마엘은 대사와 행동뿐만 아니라 연주를 통해 그의 심경을 표현한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젊은이의 기대와 한편으로 드는 불안감을 적절히 섞어 연주에 담아낸다.
배우들의 연주는 단지 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표현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 반주로서 연주를 하기도 하며, 다같이 합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극 내의 상황이나 분위기 그 자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마치 영화를 보며 배경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또, 극중에서 이미 죽은 사람의 배역을 맡은 배우도 무대에 계속 남아 배경 음악이나 다른 배우의 노래를 위해 연주를 계속한다. 물에 빠진 이스마엘을 구해주려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상을 당한 퀴케그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죽는다. 선원들은 뱃사람들의 관례대로 죽은 퀴케그를 관에 넣고 그 관을 작은 보트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낸다. 그러나 퀴케그는 두 가지 의미에서 살아있는 영혼으로서의 존재감을 죽은 이후에도 드러낸다.
극중에서 내용상으로, 그의 유령은 대양 위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이스마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비록 유령이긴 하지만 그의 영혼은 모험을 계속하는 중이며, 그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바다에 띄운 그의 시체가 그의 고향섬에 도착하는 형태로든, 내세의 세계로 들어간 그의 영혼이 그의 과향과 같은 곳에 가 있는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리고 퀴케그가 죽긴 했지만, 그 역을 맡은 배우는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무대에서 연주를 계속한다. 그의 연주는 곧 동료 선원들을 향한 그의 영혼의 메시지가 된다. 또한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동안 경험한 인생의 즐거웠던 일들과 친구 이스마엘과 고향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 모두를 담아 전하는. 이렇게 퀴케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초월하여 돌아다니며 물리적 공간 또한 무시한다.
이스마엘은 피쿼드 호가 흰고래 모비딕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당한 후에도 살아남아 최후의 목격자이자 기록자가 된다. 그는 파쿼드 호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단적으로나마 바라볼 수 있었던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성찰한다. 이 외에도 뮤지컬 '모비딕'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영적 세계에 대한 신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