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30% 이상 확대, 전과목 절대평가는 중장기 계획으로, 학종은 제동 걸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이 내건 슬로건은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공정한 첫걸음’이다. 그에 대한 방법으로 국민 중시의 숙의, 공론화를 택했다. 국가 사안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는 공론화가 사용된 사례는 신고리 원전 등 몇 가지가 있으나 흔치 않은 결정이었고 이러한 결정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대입제도에 관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고 학생, 학부모, 교사를 비롯한 국민들의 공감을 확보하기 위해 공론화를 택했다고 밝혔다. 5월 31일, 공론화 범위 발표부터 8월 3일, 개편 권고안 발표까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는 약 2개월 간의 여정을 거쳐왔다.
◇ 3가지 쟁점, 4가지 시나리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범위로 ▲선발방법 비율(학생부/수능위주전형 비율 등) ▲수능최저학력기준 ▲수능 평가방법(절대평가, 상대평가) 총 3가지 쟁점이 지정됐다. 이에 대한 시나리오로는 총 4가지가 제시됐다. 이 4가지 안은 학생, 학부모, 교원, 대학 입학처장, 대입 전문가 총 35명이 참여하는 시나리오 워크숍을 통해 정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대토론회, 미래세대토론회, TV토론회, 온라인 발언 등 이후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가 진행됐다. 이러한 논의 활성화 과정을 거친 후에는 이번 공론화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시민참여단을 구성하여 숙의토론회를 진행했다. 대입제도에 대한 유의미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통한 시민참여단의 숙의 과정이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2차에 걸친 숙의토론회가 이뤄졌다. 토론회 중 3차례의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이번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의 결과를 도출해냈다.
◇ 공론화, 그 결론은
지난 8월 3일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결론을 담은 개편 권고안이 발표됐다. 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이 2022학년도 수험생들을 위해 학생부위주전형의 지속적인 확대에 제동을 걸고 수능위주전형의 일정한 확대를 요구한 것으로 파악해 수능위주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또한 이를 재정지원과 연계하여, 기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재설계하여 수능위주전형 비율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의 경우 2022학년도 개편 때 실행하기에는 이른 중장기적 사업으로 파악했으며 수시 수능최저하격기준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활용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입제도개편에 대한 4가지의 시나리오 중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인 안은 1안과 2안이었다. 각각의 안에 대한 선호도를 리커드 척도 조사(매우 지지한다 5점, 매우 지지하지 않는다 1점으로 평가하는 방식)로 설문한 결과이다. 1안은 3.40점, 2안은 3.27점으로 두 안의 점수 차는 오차범위 안인 0.13점으로 무의미하다. 1안은 목표를 향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 추구로 정시 확대와 수능 상대평가를 주장하는 안이며, 2안은 성적에 따른 서열이 아닌 개인의 학업성취와 다양한 소질을 살리는 배움을 추구하며 수능 비중을 대학 자율로 맡기고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를 추진하자는 안이다. 상당한 차이를 지닌 두 개의 시나리오가 비슷한 선호도를 보인 것은 대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차와 대립이 커 두 안 중 하나의 시나리오로 밀고 나갔을 때 상당한 갈등이 유발될 것을 말해준다. 김영란 위원장은 전문가 사이에서 대입에 관한 의견이 타협되지 않았기에 국민을 상대로 공론화를 진행했다고 밝혔으나 국민들 간에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한편 제시된 4가지 안에서만 선택하라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EBS에 따르면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사실 이번 공론화 4가지 안은 국민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점심 메뉴 1, 2, 3, 4중에서 무엇을 먹을 것이냐 이런 수준이다. 미래현상 아니면 국가적인 현상을 봤을 때 지금 이 교육으로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1, 2, 3, 4 중에서 답이 없는데 그중에서 답을 고르라고 강제하는 것 자체가 공론화의 원래 취지를 퇴색시키는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시민참여단 또한 학생부위주전형과 수능위주전형의 단점 보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비판하며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보완을 요구했다. 논의가 학생부종합, 수능이라는 기존의 제도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했더라면 공론화의 장점이 더욱 살아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공론화에 대해 기존 논쟁으로 되돌아온 어정쩡한 결론만을 내놓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에 반해 시사저널에 따르면 김영란 위원장은 “쟁점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데 공론화의 의의가 있다”라며 명확한 결론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 일정한 방향성을 파악한 것으로 가치있음을 주장했다.
◇ 교육공약 임기 내 실현 어려워져
이번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결과,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가 중장기 과제로 미루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는 사실상 2022년 5월에 끝나는 문대통령의 임기 안에 실현되기 어려워졌다. 수능 절대평가가 전제되지 않는 한 수능과목 쏠림 현상으로 고교학점제가 실현될 수 없고, 고교학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성취평가제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의 도입은 2025년으로 미뤄졌다.
◇ 공론화라는 방식은 적절했나
대입이라는 교육 결정에 공론화를 이용한 시도가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도 제기됐다. 시민참여단이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만큼 전문성 부족에 대한 우려와 생산성 있는 결론이 나올 수 있냐는 것이다. 대입제도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로 넘긴 것이 무책임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 교육의 문제와 비전, 정책을 밝히는 것이 교육당국의 역할인데 (시민들이) 손 드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은 교육부의 ‘공직자 패배주의’”라고 비판했다. 또한 대입제도개편이 공론화에 적절한 주제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공론화는 신고리5·6호기 건설문제와 같이 선택이 단순한 경우 효과적으로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대입제도의 경우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고 여러 입장 차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공론화를 통해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 위원장은 “다수 의견이 확연히 나올 사안이었다면 공론화까지 안 왔을 수도 있다.”며 “시민들의 ‘숙의민주주의’ 경험 또한 큰 성과.”라는 입장을 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