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넘어 분노로

발행: 2014. 5. 6.

  5월 1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는 제124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의 주도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는 약 8,00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가 책임져라”,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표어와 함께 진행된 행사는 예년과 다르게 박수와 환호 없이 진행됐다.

◇ 제124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
  제124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는 서울과 전국 12개의 광역시도에서 진행됐다. 서울에서 진행된 세계 노동절 대회는 박수와 환호를 자제해 달라는 당부의 말에 이어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묵념과 함께 시작됐다. 조합원들은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행사에 함께했다.
  박수와 환호, 단체 깃발 입장, 문화공연도 없었던 이번 노동절 대회에서 유일하게 참사의 추모와 생환을 기원하는 공연이 진행됐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고로 딸을 잃고 단원고 유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경근 씨의 편지가 낭독됐다. 이어 강원 고성중 교사인 권혁소 시인의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라는 시를 전교조 김진철 교사가 대독했다. 이 시는 “이것은 이윤만이 미덕인 자본과 공권력에 의한 협살이다. 아아,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4월의 봄꽃들아, 너희들의 열일곱도, 아니 한번도 천국인 적이 없었구나, 야자에 보충에 바위처럼 무거운 삶이였구나, 3박 4일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흥분했었을 아이들아. 껍데기 뿐인 이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라는 내용이 이어졌다. 시 낭독 후 안산시민 연대의 요청에 따른 모금이 진행됐다.

◇ 발언으로 구성된 노동절 대회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은 “온 나라가 상갓집입니다. 아직도 아이들이 차갑게 바다에 있습니다. 이게 국가입니까. 대한민국은 침몰 직전입니다. 더 이상 사람이 죽지 말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들어내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였으면 합니다. 25명의 동지를 잃었던 상주로서 추모만은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고 있습니다. 추모를 넘어서 투쟁을 조직하고 슬픔을 넘어 분노를 조직해야합니다. 싸워서 세상을 바꿉시다”라며 투쟁발언을 이어갔다.
  또 하나의 약속을 통해 산재 사건을 대중들에게 알렸던 삼성 바로잡기 운동본부 활동가 황상기 씨가 편지글로 발언을 계속해 나갔다. “그 어린 것들이 물 속에서 살려달라고 엄청나게 애를 썼을 텐데 우리는 그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그 가슴을 헤아려 주지도 못하고  뉴스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유미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머리도 다 빠지고 힘이 없어 기진맥진 한 채 ‘아빠, 살려주세요.’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라면서 “세월호와 삼성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삼성은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 지, 그에 대해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하는지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일하다 암에 걸려 죽으면 개인의 질병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세월호 역시 똑같았습니다. 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안전교육을 제대로 실시 받지 못해 사고가 났는데도 승객들을 제대로 대피시키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아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라며 사측의 안전교육 실시 행태에 대해 꼬집었다. 실제로 뉴스타파의 보도에 소개된 주식회사 청해진해운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1년 동안의 직원 연수비가 541,000원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직원 연수는 직원 안전교육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른 항목 중 접대비로 책정된 60,574,370원과 비교하면 직원연수비는 접대비의 약 112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장애인 등급제 폐지호소와 민주노총 대회사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의 호소글이 이어졌다. 고 송국현 씨는 집이 화마에 사로잡혀 전신 30%에 3도의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나흘만인 4월 17일 오전 6시 40분 숨을 거둔다. 생전 송국현 씨는 행동 보조 지원을 거듭 신청했으나, 장애 3급 판정으로 아무런 행동 지원도 받지 못했다. 행동 보조 지원은 장애 2등급 까지만 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 발언을 맡은 최진영 서울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 공동대표는 “너무 분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습니다. 송국현 동지는 지역 사회에 나와 살다보니 생활 곳곳에 생활 보조가 필요했습니다. 행동 지원을 받기위해 재등급 심사를 했으나 뇌병변 장애 5급, 언어 장애 3급으로 장애 등급 3등급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행동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4월 13일 송국현 동지가 혼자 있는 곳에 불이 났고 불이 났는데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언어장애가 있어 불이 났다는 소리 조차 지르지 못하고 구급대가 올 때까지 있어야했습니다”라고 송국현 씨의 사연을 전하며 장애 등급제 폐지를 외쳤다.
  계속된 세계 전국 노동절 대회는 전국빈민연합의 연대사가 뒤따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신승철 위원장의 대회사로 마무리 됐다. 신승철 위원장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픈 이유는 그들이 이 땅의 미래이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또 잊을까 두렵습니다. 사회 변혁을 이야기하고 세상 변화를 주장했지만 어느새 우리 주변 모든 민중의 죽음에 둔감해진 게 아니냐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집단적인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집단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가치관을 바꾸지 못하면 또 다시 미안하고 좌절하고 슬퍼해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서울역에서 서울광장으로
  세계 노동절 대회의 참가자들은 서울역 광장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서울광장까지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가 책임져라’라는 현수막을 선두로 행진에 나섰다. 행진이 시작할 즈음 경찰과의 대치로 장애인 활동가 두 명이 구급차에 실려갔고 활동가 한 명이 연행됐다. 민주노총은 연행된 한 명의 활동가를 석방하지 않으면 행진을 진행하지 않겠다며 기다렸다. 얼마 후 경찰은 활동가를 석방했고 행진은 재개됐다.
  이번 행진은 여느 노동절 대회의 행진과는 달랐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김보영(고려대·25)씨는 “세월호 참사로 오늘 대회에 마음 무겁게 참여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저번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대회에 임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행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달랐다. 시민들은 도로 쪽으로 나와 행진대에서 하는 이야기와 플래카드를 주의 깊게 듣고 살폈다. 그리고 행진대를 보며 눈물짓는 시민들도 있었다. 행진이 끝나갈 때 즈음 70대 노인이 사다리위에서 행진을 취재하던 KBS 기자의 사다리를 밀쳐 기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기자가 구급차에 실려간 이후 제124회 세계 노동절 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 도착해 각자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분향에 참가하고 별다른 해산 집회 없이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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