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도시에서 먼지를 먹으며 공부해 왔던 나는 맑은 바람과 총총한 별빛 아래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충북 청원군 다락리에 있는 예비교사들의 작은 요새인 한국교원대학교는 내가 꿈꾸던 세상이었고 학비와 기숙사비 무료라는 혜택은 고민할 것도 없이 내가 이 학교에 등록하게 만들었다.
  헌내기가 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수능시험이란 그것을 언제 보았냐는 듯이 까마득한 과거로 느껴진다.
  그 이유는 대학이라는 넓은 세상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풍요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고 스스로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중에서 나의 삶의 방식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일등 공신은 기숙사 생활이었다.
  한국교원대학교 생활관에 입주를 할 당시 많은 것들이 낯설었다. 생전 모르던 사람들과 살아보면서 서로 다른 생활 패턴으로 갈등을 격기도 했지만 학기를 거쳐 가면서 이해하고 맞춰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숙사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 매주 주말마다 집에 가면서 나의 짐 싸기 노하우는 나날이 발전하였다.
  처음 입사할 때에는 이삿짐만한 물건들을 가져왔었고 집에 갈 때에는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이 많은 책들과 옷들을 캐리어에 넣어 다녔던 것 같다.
  잦은 이동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게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들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물건에 대한 욕심들을 차츰차츰 버려나갔다.
  그 이후 정말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기숙사 서랍은 여유로워졌고 집에는 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갈 수 있었다.
  만약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필요 없는 물건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으로 인한 과소비는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고 재정 상태도 궁핍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1년 정도 이동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 관리의 노하우도 생겼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산다. 나의 경우 매주 집에 다녀오는 일은 은근히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사실상 집에 가면 집안일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종교 활동 등으로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틈틈이 과제를 하는 것이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시간이 2시간이라고 하면 2시간 내에 과제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시간이 많을 때보다 오히려 과제를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분할해서 살다보니 하루에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마음은 뿌듯했다.
  기숙사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사적인 공간이 필요해질 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 외로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책은 바깥세상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줬고 나는 책의 주인공들과 대화하며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은 우리 학교의 보물이라 여길 만큼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곳이다.
  운 좋게도 도서관에서 근로를 하게 되었는데, 예전에 카트를 밀며 책 정리를 하다보면 눈에 보이는 책들마다 독파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서 그걸 참느라 힘들었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온라인 게임보다 책을 찾으면서 독서량은 늘었고 공부에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은 나도 기숙사 생활이 답답하고 집이 그리워서 방학할 날과 졸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요즈음 졸업사진 촬영에 한창인 선배님들을 보면 나도 머지않아 16년의 학창시절을 마무리하고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는 현실이 체감되면서 학교에 계속 남아있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파닭과 순바가 함께하는 기숙사 생활도 영영 안녕일 것 같아서 아쉽다.
  실질적으로 학교에 머무르는 기간이 약 11개월(3.5개월×3학기) 밖에 안 남았다. 남은 학기 동안 데이지가 꽃피고 개구리가 개골거리는 학교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충분히 적시고 싶다.
  다음 학기는 교생 실습이 있어서 더욱 기다려지고 학생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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