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고위 공직자들이 학교를 방문해 일일교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올해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의 한 중학교를 방문하여 일일 명예교사로 활동하였으며, 2년 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경기도의 한 야간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특강을 했었다. 2년 전 대통령의 특강에 대해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일선 교사들을 격려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킨다’는 취지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고위공직자들의 일일교사 활동은 과거에 왕들이 학교에 행차하여 학문활동을 진작시키고자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 시기의 왕들은 학교를 방문했을 때 자신이 직접 강의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일일교사와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역대 왕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학문 활동을 진작시키고자 하는 활동은 신라시대 국학의 행학(幸學)이나 고려 국자감이나 조선 성균관의 시학(視學) 등을 들 수 있다. 행학이나 시학의 경우 우선 왕이 학교에 행차하여 대성전에 모셔져 있는 가장 큰 스승이자 어른인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형식을 통해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난 후 명륜당으로 자리를 옮겨 그 곳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학생들과 함께 청강하였다. 조선시대의 경우 공자님께 인사를 드린 후 자리를 옮겨 알성시라는 임시 과거시험을 보기도 했지만, 적어도 왕이 성균관에서 직접 강의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렇듯 왕이 학교에서 행하는 활동은 기본적으로 스승에 대한 예우를 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학교에 모셔져 있는 가장 큰 어른이자 스승인 공자에게 예를 표함으로써 왕도 공자님 앞에서는 학생의 자세로 배우겠다는 모습을 여러 신하들 앞에서 보여주었다.
또한 명륜당에 자리를 옮겨서도 선생님의 수업을 청강함으로써 비록 왕이라고 하더라도 선생님에게는 언제든지 배워야 한다는 점을 몸소 실천하였다.
다시 오늘날로 돌아오면 2년 전 청와대 대변인이 말한 ‘교사들을 격려한다’는 취지는 오늘날의 일일교사 활동으로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일선 학교를 방문해서 특강을 할 경우, 그들의 방문 자체가 해당학교에게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의 격려의 한 마디는 충분히 교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일일교사로 방문한 분들이 평소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학생들에게 선생님 말씀을 잘 새겨들으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게 된다면 분명히 교사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고, 일선 학교의 교사들의 사기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일일 교사 활동이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킬’ 수 있는지는 정말로 의문이다. 일일교사가 직접 강의를 하게 되면 거기에 모여 있는 교장 선생님 이하 다른 선생님들도 일일교사의 강의를 듣기 마련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평소에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지체 높으신 일일교사가 오게 되면 그 일일교사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을 본 학생들이 일일 교사가 다녀간 이후에 과연 평소에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더욱 존경할 수 있게 될까? 오히려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겠다고 한다면 일일교사로서 강의를 하는 것보다는 그 학교의 선생님의 수업을 청강하는 것이 그 취지를 살리는 데 훨씬 좋은 방법이다.
학교라는 곳을 방문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선생님의 수업을 경청한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교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확산시키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 높으신 분이 ‘선생님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고, ‘내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서 훌륭하게 되었다’고 백 번 떠드는 것보다, 높으신 분이 선생님 수업을 경청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직접 보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학교에 방문하여 어느 선생님의 수업을 청강한다면 자연스럽게 전체 선생님의 지위를 높일 수 있을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선생님을 바라볼 때의 마음가짐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도 학교에서는 우리 선생님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학생들이 그러한 선생님들 앞에서 함부로 행동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신라시대 이래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행하였던 행학과 시학의 전통을 오늘날에 맞게 되살리자는 것이기에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대통령이 어느 학교를 방문하여 그 학교의 수석교사의 수업을 경청한 뒤,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오늘의 수업 내용을 통해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이러한 상상을 바로 내년에 대통령이 될 누군가가 이뤄주길 바라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너무나 순진한 상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기자명 이상무(교육학과) 강사
- 입력 2018.03.2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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