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에 타서, 곤히 자다 종점에 도착할 즈음이면 으레 자기도 모르게 절로 눈이 떠지곤 한다. 이번도 어김없이 감겼던 눈을 떠보면 터미널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이고 버스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그렇게 여주에 도착했다.
여주는 경기도 남쪽에 자리 잡은 한편, 남한강을 제 몸 한가운데 담고 있다. 때문에 남한강을 중심으로 평야지대가 발달하여 예로부터 여주에서는 좋은 미곡을 생산하여 임금님께 맛좋은 쌀밥을 진상했다고 한다. 또한 여주에는 광토(질 좋은 흙)가 풍부하여 자기를 만들어 낼 조건을 갖춘 데다 차령과 광주, 태백산맥이 여주를 감싸고 있어 자기를 구울 땔나무도 넉넉하다. 여주가 도자기로 유명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주에서는 매년 5월이면 ‘여주도자기축제’를 연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서 가만히 5분을 흘려보내면 신륵사관광지에 있는 도자기축제장이 도착할 수 있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어서, 여주대교를 건너며 조약돌로 수놓은 별자리 그림과 남한강의 풍치를 즐길 여유를 바란다면 걸어가도 좋다.
그 입구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지붕이 반달처럼 생긴 반달미술관과 가운데가 하늘로 뻥 뚫린 도예랑이다. 반달미술관에서는 여주 신진 도예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남한강 젊은 도예인전’, 술과 도자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하는 ‘주도전’, 그리고 도예가들을 릴레이로 초청하여 작품을 전시하는 ‘한국생활도자 100인전’의 세 가지 테마를 주제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마냥 하얀 백자부터 선으로 색으로 화려한 도자기들까지 작가마다 가지각색이며, 자기와 주변 사물을 섞어내어 작품 군 그 자체로 바다, 혹은 바람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예랑에서는 흙 높이 쌓기 대회를 진행하는데 가족단위로 참여할 수 있어 교원대생은 아쉽게도 짧게는 몇 년, 혹은 십 여 년이 지난 후에야 참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축제의 한가운데로 파고 들어가면 여러 구경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 가장 볼만한 것은 여주도자명품판매관이라 할 수 있다. 자기회사 내지 개인 도예가가 각자 작품을 진열해 놓고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굳이 사지 않고 눈구경만 하더라도 마음을 흡족히 채워준다. 판매관을 빙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자기를 사진으로 찍고 찍다보면 어느새 한 두 시간 정도는 흘러가 있으니 말이다. 판매관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음에 꼭 드는 자기 두어 개가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을 테니 살까 말까, 고민할 법도 하다.
판매관 바깥에는 다양한 놀거리들이 준비되어 있다. 판매관 바깥의 기나긴 화랑을 따라 수많은 어린이들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직접 자기를 만들어 보는 자기 체험관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점토를 오물조물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새 울툴불퉁한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그네들 중엔 애답지 않게 능숙하게 작품을 완성하고 그림까지 새겨 넣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가 뽀로로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며 울어대는 아이도 있다.
접시 깨뜨리기 대회와 머그컵 낚시대회도 준비되어 있다. 머그컵 낚시대회는 인조강 바닥에 잠긴 머그컵을 낚싯대로 건져 올려 가지는 게임이다. 이곳의 행사장이 가장 조용한데, 참가자들이 머그컵을 정신없이 낚느라 가끔씩 건져 올리는 사람을 제하고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접시 깨뜨리기 대회는 과녁에 접시를 던져 맞추는 게임인데 호기롭게 나섰다가 수줍게 돌아오는 사람이 수두룩하여 하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욱 재미가 있다. 이외에도 마술공부, 각설이타령, 도자기경매 등 많은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다. 여주도자기축제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위의 행사들의 일정이 올라와 있으니, 방문하기 전에 당일의 일정을 확인하여 시간별로 어떤 행사에 참여할지 미리 생각해 가는 것이 좋다.
여주도자기축제장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넓은 남한강이 길게 펼쳐지면서 신륵사 가는 길이 보인다. 신륵사라는 절은 원효대사가 세운 고찰로서 그 건물마다 나름 맛이 있어 볼만하다. 신륵사 언덕 위, 전탑자리에서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남한강 풍경을 만끽하며 축제를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 기자명 김택 기자
- 입력 2018.03.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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