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잇몸에는 금속이 박혀있다. 잇몸 속에 숨은 송곳니를 빼버리고 빈자리에는 임플란트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때가 중학교 때였는데 아직도 수술 장면이 생생하다. 우선 잇몸 뼈에 금속을 박을 구멍을 뚫고 볼트를 끼듯이 지지대를 돌려 뼈에 고정시켰다. 잇몸에 구멍을 뚫을 때 그 기계소리와 두개골을 울리는 진동은 마치 어느 영화의 수술대에 누워있는 인조인간을 생각나게 하였다. 내 가짜 송곳니를 보면 왠지 내 자신이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이 생각이 든 이유는 내가 읽었던 소설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어느 거리에서 뤽은 자신의 집에 들어와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쳐간 도둑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녀의 입맞춤을 기억하고 그녀를 쫓아간다. 돌아선 그녀는 뤽의 두 어깨를 잡고 꽉 누르면서 건물 벽에다 밀어붙였다. 그녀는 옷깃을 양쪽으로 홱 잡아당겨 가슴속을 파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뤽의 심장을 꺼냈다. 피 한 방울 솟지 않았다고 뤽은 생각했다. 그녀는 말했다. “이런걸 달고 있는 주제에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손에는 유압 시계 장치가 들어있는 인공심장이 있었다.
미래에는 인간들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과학의 힘으로 인공장기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에 나온 장면이다. 미래에는 물건들이 인간처럼 말하고 알아서 일해 주는 최첨단의 모습이 나온다. 오늘날 과학을 보면 소설 속의 세상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인공장기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생을 연장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다.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생활은 더욱 편리해지고 기계와 함께하는 삶이 익숙해졌다.
인공장기의 발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심장은 이미 사용되고 있으며 인류는 이제 인공피부, 인공난소, 인공췌장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미줄의 원리를 응용해 원하는 화학물질이나 세포 등을 자유자재로 조합해 다양한 기능의 실을 만드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100마이크로미터 이하 굵기의 이러한 극세사는 바이오 인공장기 제작, 손상된 신경 재생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또한 간‧섬유‧신경세포 등을 실내‧외부에 심어 바이오 인공장기와 손상된 신경 재생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뿐만 아니라 칩을 몸에 넣는 경우도 있다. 영국 레딩대학교 인공두뇌학과 교수인 워릭은 자신의 몸을 ‘인간과 기계의 결합’ 곧 사이보그 실험의 재료로 삼았다. 두 차례 수술실험을 받고 그는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가 됐다. 저자의 수술 실험 기록 ‘사이버네틱 오가니즘’, 곧 생리기능의 일부가 기계로 대치된 인간이나 생물체를 뜻하는 ‘사이보그’를 실험한 것이다. 1998년 첫 실험에서 그는 동전만한 컴퓨터 칩을 왼쪽 팔 근육에 집어넣었다. 이 칩은 워릭의 이동 경로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등 그의 활동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고, 9일 뒤 제거됐다.
이후 4년 뒤인 2002년, 워릭은 더욱 진일보한 실험에 착수했다. 100개의 실리콘 전극이 달린 대못만한 전기 배열기를 왼쪽 팔 정중 신경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인간과 컴퓨터가 연결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신경이 컴퓨터에 결합됐다. 사람의 신경 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 그가 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연결한 로봇 손을 움직이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실험에 나선 사람은 워릭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이레나도 실험에 참여했다. 이레나의 신경에 전극바늘을 삽입해 두 사람의 신경계 사이에서 신호를 주고받는데 성공했다. 이 실험으로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 개발의 가능성이 열렸다. 워릭은 사이보그가 기계를 통해 인간을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미래의 대안이라고 역설한다. 기계 두뇌는 그 용량과 능력을 계속 확장, 개선할 수 있지만 인간의 두뇌는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기계 두뇌와 인간의 뇌를 결합시키면 정보의 저장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고, 네트워크로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기계의 도움으로 우리는 우리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하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인공장기를 달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자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여, 그대들에게 영혼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자연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과학기술로 점철된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유기체가 없어진 미래에 기계와 우리가 다른 이유는 뇌가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곤 그 꿈에서 깨어나라고 소리친다. 우리를 편리하게 하는 과학은 인간을 새로운 종으로 이끌어내는 것일까, 인간임을 상실하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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