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게 봄인 듯하더니 초여름 날씨로 넘어가 버렸다. 꽃들도 정신을 못차리고 피는 순서에 상관없이 뒤죽박죽 얼굴을 내미는데 급급한 것이 정신없이 선진화개혁을 좇는 대학들을 보는 듯하다.
모처럼 장밋빛 청사진을 펼친 이번 학기 첫 전체교수회의를 지켜본 교수들의 얼굴표정은 복잡하다. 무사안일보다야 낫겠지 하는 마음과 불안함이 살짝 가미된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복지 미끼와 함께 던져진 과제들은 흥미로움과 함께 학교 전체와 교수 개인에게 만만찮은 부담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현 정권과 전 정권 초기에 ‘전봇대 뽑기’와 ‘대못박기’라는 단어가 회자되었었다. 의도의 가치 여부를 떠나서 모두가 충격감을 통한 참신성의 효과를 노린 방법임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 후 전봇대 뽑기나 대못박기가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단어들이 당시에는 정권들의 성격을 잘 대변하고 최대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 바뀔 때마다 들고 나오는 개혁타령에 온 국민의 피로감이 누적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런 일들이 다분히 이벤트 성격으로 반복되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양상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규모지만 우리 대학에서도 역대 총장 취임 초기마다 매우 의욕적이기도 하고 요란하기도 한 형태로 정책적 이벤트가 펼쳐지곤 했다. 직전 총장 초기에만 해도 교직원 전진 배치라든가 교실친화사업, 담당지도교수제, 전공부겸무제 등 많은 의욕적인 일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구상되고 추진되어 시행되었다. 그런데 그 중에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구성원들의 진지한 참여 속에서 내실 있게 지속되는 일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대개 권력을 잡은 사람이 초기에 느끼는 유혹은 두 가지 정도가 우선일 것이다. 자신의 새로운 비전을 모두에게 보여서 탄성과 함께 지지의 박수를 끌어내고 싶은 것이 하나일 테고, 사람들에게 실권자로서의 위용을 보이고 싶은 욕망이 또 다른 하나일 것이다. 새 신을 장만한 아이는 새 신을 뛰어보고 싶고, 새 칼을 장만한 칼잡이는 새 칼을 뽑아서 화려하게 휘둘러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새 총장 임기 전에 어느 교수가 새 총장 준비 팀이 다소 들ㄸ 있는 것 같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출발하는 시기라서 그럴 수 있다고 대체로 봐주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런 반응이 어느 시점에 가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평의회구성같이 학교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가 시작부터 잡음과 혼선이 빚어지더니 결국 연기되었다. 출발 즈음에 벌어진 일들이기에 아직 무어라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치밀한 준비와 차분한 진행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수많은 선거공약에 대해 교수들이 가졌을 수 있는 불안감이 이번 교수회의에서 제시된 청사진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약실천 못지않게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정책수립과 실천이다.
전임자 시절에 추진했던 일을 후임자가 받아서 계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던 사례를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책임자만 바뀌면 슬그머니 이름이 바뀌고 내용이 바뀌고 종내는 종적이 묘연해지는 일이 반복된다. 책임자만 바뀌면 빛을 잃을 만큼 가벼운 정책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전임자의 졸속일까 후임자의 의도적인 무시일까? 물론 실무진들의 의욕과 책임 문제이지만 결국 최종책임은 임명권자인 총장의 몫이다.
무엇을 새로 시작하는 것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치밀하게 계획하여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먼저 뛰고 나서 후에 생각하는 우리의 조급증을 증명해 보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영리행위가 아닌 교육활동이란 점 또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근본성격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