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을 할 때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지를 들여다보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vonomics)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토대 자체를 정면반박하고 나선 인물이다. 사람들은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향으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정리한 이론이 ‘전망 이론(Prospect theroy)'이다. ’전망 이론‘이란 ’이득‘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한 것으로, ’손실 회피 성향‘과 연결된다.

사람들은 손실에 민감하다. 손실에 의한 심리적 효과는 이득에 의한 심리적 효과보다 두 배 이상 크다. 버스를 타다가 지갑에서 100원을 떨어뜨렸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가다가 100원을 주웠다. 우리는 “그게 그거지”라고 하는 대신 “아, 100원 더 벌 수 있었는데”라고 생각한다. 떨어뜨린 100원은 주운 100원보다 두 배로 소중하다.

실제 캐나다에서 130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질문을 해봤다. 어떤 자동차 모델이 너무 잘 팔려서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그 차를 받기까지 평균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 이에 한 자동차 대리점은 지금까지와 달리 카달로그에 표시된 가격에 20만원을 덧붙여 팔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대리점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사람들은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생각할까? 불공정하다고 생각할까?

한편 어떤 자동차 모델이 너무 잘 팔려서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그 차를 받기까지 평균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 한 자동차 대리점은 원래 카달로그에 표시된 가격에서 20만원 할인된 가격으로 차를 팔아왔지만, 이제는 할인을 중단하고 카달로그에 표시된 가격대로 팔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대리점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사람들은 받아들일 것인가?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토로할 것인가?

첫 번째 자동차 대리점, 즉 앞으로 20만원 더 받겠다고 한 대리점의 결정이 불공정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71%나 됐다. 반면에 두 번째 자동차 대리점, 즉 할인을 했다가 앞으로는 원래 가격으로 받겠다고 한 대리점의 결정이 불공정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42%에 불과했다. 가격을 올리는 것이나 할인을 없애는 것이나 자동차 가격이 20만원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니얼 카너먼은 이렇게 설명한다. 똑같이 20만원을 더 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격을 올리는 방식’에 대해 정반대의 느낌을 받게 된다. 기존의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은 명백한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할인을 없애는 방식은 이득을 볼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후자는 ‘손해’가 아니라 ‘기회의 상실’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화낼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한 가지 더 다른 예를 살펴보겠다. 대니얼 카너먼은 10달러짜리 연극 티켓을 미리 구입한 후 극장에 가는 길에 연극표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 10달러짜리 연극 티켓을 현장구매할 생각으로 극장에 가는 길에 10달러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경제적으로 10달러를 잃었다는 동일한 손실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첫 번째, 미리 구매한 연극표를 잃어버렸을 때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한 반면에 두 번째 상황, 즉 10달러를 잃어버렸을 때는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그대로 극장에 가서 표를 사겠다”고 답했다. 앞서 자동차 대리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전자의 상황을 ‘명백한 손실’로 인식하지만, 후자의 상황은 ‘기회의 상실’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방식을 경제학에서는 ‘손실회피’라 부른다.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의 행동은 손실을 피하는 쪽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결국 사람은 어떠한 변화에 노출될 때 손해와 이득 중 손해를 더 크게 체감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선택 때문에 포기해야 할 다른 선택의 ‘기회비용’은 종종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체로 현재 상태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경제인구’에 진입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보수주의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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