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변할지라도 본질은 잃지 말아야…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떼지어 모인다. 모두들 얼굴에 결의를 한가득 안고 있다. 이어 마이크가 등장하고, 한 사람이 나와 투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호응하여 모두가 구호를 외친다. 이야기가 끝나자 웅장한 멜로디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다같이 주먹을 쥐고 노래를 부른다.
민중가요를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투쟁가’, ‘운동가’와 비슷한 이미지다. 투쟁과 운동이 필요한 특정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느낌이 짙다. 물론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닌 남이다. 오늘날의 민중가요는 ‘남의 이야기’다.
◇ 민중가요란 무엇인가
‘민중가요’라는 용어가 민중가요의 생성과 동시에 일반적인 요어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투쟁가’, ‘운동가’라는 말로 자주 불렸다. 똑같은 노래들이‘ 투쟁가’라는 지엽적인 의미에서 ‘민중가요’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명찰을 바꿔 달게 된 계기는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이었다. 투쟁의 주체가 특정 사람들뿐만 아니라 민중 전체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투쟁가였다면, 투쟁하는 민중이 부르는 노래가 민중가요가 된 것이다.
민중가요는 당대의 민중들이 부르는 노래다. 노동가수 김성만(52) 씨는 민중가요를 일컬어 “저항성과 실천성이 들어있는 삶의 노래”라고 말했다. 민중가요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 민중들의 삶은 곧 투쟁이고 운동이었다. 우리가 민중가요를 여전히 ‘투쟁가’나 ‘운동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민중들이 부르는 노래는 너무나 많다. 어떤 것을 민중가요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대중가요와 민중가요가 혼동되기 일쑤다. 이에 대한 김성만 씨의 생각은 이렇다.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굳이 구분하려 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나가면 된다. 하지만, 대중가수가 서민을 노래한다고 해서 민중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항성과 실천성이 들어가는 노래만이 민중가요라 불릴 수 있다.”
◇ 민중가요, 민중에게서 멀어지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2집 앨범이 당시 100만 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하는 등, 80~90년대의 민중가요는 무대에 올라 대중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노찾사’, ‘꽃다지’ 등의 노래패들로부터 시작된 이 ‘민중가요의 대중화’는 민중가요가 그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 그 상황은 달라졌다. 민중가요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이 부르는 노래가 실제로 ‘민중가요’였고,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민중들은 점차 투쟁에서 멀어졌다. 그에 비해, 민중가요는 투쟁과 멀어지지 않았다. 투쟁의 노래인 민중가요는 투쟁과 멀어진 민중들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주제뿐만 아니라, 민중가요의 멜로디 역시 현재의 민중들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의 민중들이 원하는 음악적 장르와 기존 민중가요가 가지는 색깔은 매우 다르다. 민중들은 투쟁과 멀어졌을 뿐 아니라 민중가요라는 장르 자체와도 멀어진 것이다. 그 괴리의 가운데 오늘날 민중가요는 ‘민중의 노래’에서 ‘투쟁과 운동이 필요한 특정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민중이라는 이름만이 남아있는 채 민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 다양성, 그리고 본질
그러자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민중가요도 달라졌다. 대중가요처럼 한층 ‘세련된’ 멜로디로 노래를 구성하기도 하고, 가사의 ‘수위’를 낮추기도 한다. 대중가요를 민중가요처럼 부르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민중가요가 이렇게 변모하는 것이 민중가요의 정신을 잃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혹자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김성만 씨는 이에 대해 “민중음악의 침체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투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고 하면서 “시대가 흘러갈수록 다양성이 중시되어야만 민중가요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서 민중가요의 다양성이 가지는 중요도를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다만 그 노래에 무엇을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며 말을 끝마쳤다.
다양성을 중시하면서도 민중가요가 민중가요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주자가 노래에 무엇인가를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민중가요를 부르더라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면 민중가요를 제대로 부르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피상적인 연주 자체의 모습이나 질보다 그 목적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난 27일 금요일 김성만 씨는 집회에 참여해 청중의 숫자에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노래를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