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우리들은 ‘국민의례’가 있을 때면 자연스레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그 행위는 오랜 기간 반복해 온 것이어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그 ‘자연스러움’에 반대하는 주장이 있다. 국민의례가 지나친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례가 아닌 ‘민중의례’라 명칭하기도 하고, 애국가가 아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한다.
◇ 왜 국민의례를 거부하는가?
나치 지배 하의 독일 국민들이 외웠던 ‘히틀러를 위한 기도문’이라는 것이 있다. ‘주기도문’을 본뜬 것으로, 히틀러의 뜻이 ‘이 땅 위의 법칙’이 되기를 비는 기도문이다. 독일 국민들을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나치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이 ‘기도문’이 일조했다.
‘나치’라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최근 특정한 사건으로 폭발하기도 했던 공동체 의례에 대한 담론은 그전부터 있어 왔다. 국민의례와 같은 공동체 의례가 지나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논쟁이었다. 실제로 국민의례는 군사정권이 국민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 중 하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을 유도하기 위한 촉매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노조위원장은 “공동체 의례들은 우리가 소속감이나 정체성 등을 형성하는 데에 관여한다”면서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이라는 것은 국가주의다.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속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을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의례도 늙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은 각자 ‘성년의 날’을 기리는 의례를 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성년의 날’을 기념해 ‘성년례’를 거행했다. 오늘날 일본의 ‘성년의 날’은 축제와 같다. 일본에서는 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이 ‘성년의 날’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날 여성들은 미혼 여성들만 입는 기모노인 ‘후리소데’를 입고, 남성들은 정장을 입는다. 각각의 시 정부에서는 성년의 날을 기념해 특별 기념식을 열어 지역별로 크고 작은 축제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예전부터 이어져 온 의례들은 기본적으로 그 의례를 치르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앞으로 있을 그들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일본의 ‘성년의 날’은 오늘날에 와서는 즐겁게 노는 축제의 의미가 더 강하다. 또, 우리나라의 ‘성년례’는 잘 행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15일에 있었던 우리학교 ‘성년의 날’ 행사에서 한 학우는 청주방송 카메라에 당당히 ‘이 행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의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변하거나 흐릿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의례’에 대해서
비록 ‘성년례’만큼은 아니지만, 국민의례도 나이를 먹었다. 젊었을 때 만큼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날 국민의례를 하면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의례를 보면서 국수주의를 걱정하는 것은 괜한 노파심일지 모른다. 이에 대해 김선회(초등교육·11) 학우는 “국민의례를 진행하는 것이 국수주의를 유발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애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학기 우리학교 학생총회에서는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민중의례’를 진행했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 속에서 호국열사에 대한 묵념의 시간만을 가진다. 하지만 많은 수의 학우들은 그러한 사실도 잘 지각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의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국민의례가 늙기는 했어도, 그것이 처음 만들어진 의도는 분명 위험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례를 ‘으레’ 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의례에 참여하더라도 자신의 참여에 대해 생각을 하고, 참여하지 않더라도 불참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