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오심 판정으로 얼룩진 종목도 있는가 하면 첫 금메달이란 수확으로 흥분된 종목도 있다. 수많은 감정들을 뒤로하고 귀국하는 선수들은 메달을 땄느냐 못 땄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시선을 마주한다.
모두가 메달을 따면 좋았겠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메달을 놓친 선수도 있고 부상으로 인해 기대에 덜 미치는 메달을 탄 선수도 있다. 물론 관심조차 받지 못한 많은 국가대표선수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메달리스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역도의 유망주인 사재혁 선수는 경기 도중 팔꿈치가 빠지는 부상을 겪고 결국 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그마저도 노력의 부족’이라며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선수 자신 또한 자책과 절망 속에 빠져 역도를 그만둔다며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복싱의 유망주인 23살의 신종훈 선수는 16강에서 13:13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승자는 상대편 선수였고 그는 메달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사글세방에 살던 그는 복싱을 통해 집안이 나아지는걸 보며 “열심히 하니까 주어지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에서의 패배는 그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악착같이 열심히 훈련한 그의 노력은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늘 해맑던 그의 모습을 순수하다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그의 패배 이후 “그렇게 까불대더니 한번 큰코 다칠 줄 알았다”고 비난하였다. 꼭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선수의 인성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 것만 같다.
올림픽에서의‘성적’을 통해 사람들은 그들을 평가하고 선수들은 그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건 그 ‘성적’까지만이다. 선수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 그들의 인생과 인성까지 판단할 순 없다. 그런데 우리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성적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들의 내부까지 판단하곤 한다. 심지어는 선수들조차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다 운동을 그만두는 상황도 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실전에선 어느 변수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때론 안 되는 게 있다. 너무나도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나거나 선수 자신도 몰랐던 몸의 한계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올림픽에서만이 아니고 우리 삶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관대하며 남에게는 엄격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대학’이 중요한 한국에서, ‘입시’만을 위해 12년을 매달리는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엄격하다.
성격이 활발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하는 행동은 참 좋은 제자이자 자식이다. 하지만 공부를 못하므로 그 성격에는 문제가 있고 얌전히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야만 한다.
모의고사에선 좋은 성적을 보이지만 수능 날 긴장한 탓에 저조한 성적을 보인 학생은 그마저도 자신의 실수이다.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수능을 못 봤으므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으므로 그간의 노력과 성과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런 시선들 속에서 자란 대한민국의 수많은 ‘노메달리스트’들은 그 시선을 당연시 여긴다. 더 나아가 타인과 자신들의 제자와 자식에게 똑같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인간 사회엔 다양한 변수가 있고 각 개인은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이를 서로 존중해줄 때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특히 인생에서 자신들의 첫 도전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할 다양한 도전에서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을, 다시 일어나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모든 ‘노메달리스트’들은 공식적인 메달은 놓쳤을지언정 그들 자신만의 메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