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종의 기원
작가: 정유정


정유정 작가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악인’을 통해 인간의 ‘악’을 그려왔다. 하지만 악인이 외부자로 등장했던 전작들과 달리, <종의 기원>에서는 나 자신이 악인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인간의 ‘악’에 대해서 보다 내밀하게 느끼고, 경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종의 기원>이었을까?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저서 <이웃집 살인마>에서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진화과정에 적응해야했고,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조상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라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며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인 ‘유진’ 또한 그 중 하나이다.
평소의 그는 정신과 의사인 이모의 감시와 어머니의 철저한 규칙속에서 올바른 행동을 강요받는다. 그 결과, 그는 부작용에 시달리면서도 매일같이 발작억제제를 먹고, 오후 9시 통금에 딱딱 맞춰 집에 들어오는 ‘모범생’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쾌락을 쫓아서 몰래 약을 끊고 밤외출을 나가는 날에는, 어두운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악인’이 된다. 그렇게 ‘유진’은 범인과 악인의 사이를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작은 도피를 다녀온 다음날 아침, 그는 피투성이의 방에서 깨어나 사건을 마주한다.
작품 초반에 혼란스러운 채로 집안을 헤매는 ‘유진’은 어젯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다. 그렇기에 그의 시점을 따라가는 독자는 무지의 상태에서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야만 한다. 그들은 ‘유진’과 함께 잊혀진 기억의 조각을 맞춰야하고, 그의 독백 속에서 과거의 편린을 찾아야한다. 그렇게 하나씩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악인의 탄생기’를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