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람들
발행 : 2014. 4. 21
[마사 스타우트의 심리학 저서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를 참고․인용]
‘ 마음은 얼굴보다 훨씬 더 천차만별이다 - 볼테르 ’
우리는 신문의 사회면을 볼 때마다 기괴한 사건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끔찍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요. 보험금과 같은 금전적 보상을 위한 의도적인 살인부터, 심하게는 한 국가의 시민을 몰살하는 데 이르는 무시무시한 테러에 이르기까지 그 범죄 방법과 범위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 예시를 차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건들은 흔히 있는 선량한 사람들을 경악시킵니다. 그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반인륜적인 사건이라 칭하며 마음 속 깊이 슬퍼합니다. 그러한 사건들의 주체는 어떤 사람들이길래 붙잡힐 것을 각오하고서도 자신이 의도한 일을 가책 없이 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흔히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들의 무죄의식 증상을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소시오패시(sociopathy)’라고 하며 이러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을 ‘소시오패스(sociopath)’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심지어 자신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 ‘양심 실종자’들의 성격 손상은 오늘날 전체 인구의 대략 4%, 즉 스물다섯 명당 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지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소시오패스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들은 지위를 불문하고 어떠한 장소에든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요, 96%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그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와 다름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겉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그 활동 범위가 너무 다양해 차마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해 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소시오패스의 극단적인 예는 살인범이나 테러범입니다. 소시오패스들은 무언가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지닌 소시오패스는 심할 경우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의도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 지도자가 사람들 위에 강림했을 때 그 권위는 불길처럼 치솟아 지시를 받는 모두가 ‘합리적인’ 일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비범한 소시오패스 지도자의 예시로써,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 조직에 의해 발생한 미국대폭발테러사건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1980년 5월 18일 자신의 권위 보장을 위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지도자 전두환을 들 수 있겠죠. 밀그램이 행했던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권위를 휘두르기에 합당한 사람이 자신한테 지시를 내릴 경우 복종하는 양태를 취한다고 합니다. 정해진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에게 점진적으로 더 큰 세기의 전기 충격을 가하는 임무를 맡겼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이 망설이다가도 권위자의 재촉에 자신의 임무를 합리화시켜 최고 단계의 충격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은 꽤 놀랍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지도자를 만나고, 그들의 지시에 복종합니다. 이 때 소시오패스가 우리의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조종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친구, 동료, 연인이었을 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소시오패스를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책의 저자인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가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중 다수는 소시오패스에 의해 심리적 손상을 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믿기지 않겠지만 소시오패스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매력’입니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할 줄 알고, 단조로운 사람들을 아찔한 일탈 속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96%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을 동경하며 한 번쯤 친해져보고 싶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보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소시오패스와 가깝게 지내게 되고 결국 복종하게 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것은, 극단적인 소시오패스보다는 ‘일상적인’ 소시오패스의 예시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극단적인 소시오패스들을 만날 가능성은 극히 적으나 일상적인 소시오패스들은 우리 주변 어디든 널려 있습니다. 애착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양심적인 다른 사람들을 회의감에 빠뜨리지만 그 자신만은 특유의 대담함으로 멋진 삶을 이룩해 나가는 사람은 기실 표면적인 모습으로 봤을 땐 우리의 동경을 끌어냅니다. 또한 자신의 외모나 능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여 그의 경력에 흠집을 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 편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연인의 집에 기생하는 사람 등 일상적인 소시오패스들은 사실 주변에서 찾고자 하면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흠집을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따윈 느끼지 않고선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든 스스럼없이 내보입니다. 그들의 정상인 코스프레를 판별해 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동정 행동’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를 구타한 직후 갑자기 괴로워하며 ‘난 이래서 안 돼.’, ‘난 불쌍한 사람이야.’ 라고 부르짖는 것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증상입니다. 그들의 이런 행태는 자신이 타인에게 가한 행동이 도마 위에 오를 때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선량한 사람의 동정심을 이용하고 불리할 때마다 우울함을 무기로 내세워 일반인들이 자신을 질타하지 못하게끔 만듭니다. 그들은 선악을 구별할 줄 알지만 이에 구애받지 않는 것 뿐이기에, 또 이러한 사실을 영악함으로 감추곤 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이러한 비폭력 소시오패스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힘들게 됩니다.
또한 소시오패스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절대 이상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정작 정신적인 피해를 입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닌 그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됩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감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들이, 자기 자신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추측해 보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이렇게 보면 소시오패스로 살아가는 편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편해 보이기도 하죠. 내면의 죄의식과 가책, 다른 사람의 감정을 신경쓸 것 없이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죄의식이나 가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소시오패스가 아닌 ‘양심 있는’, 죄의식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양심을 결여한 사람들은 우리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감정들을 경험하며, 사랑은커녕 인간에 대한 그 어떤 종류의 긍정적인 애착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조차 힘든 이런 결핍은 삶을 끝없는 게임으로, 즉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헛된 시도로 전락시킵니다. 그들의 삶엔 공허함만이 존재하며 결국 그들의 인생은 헛된 걸로 판명 납니다.
양심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어떤 대상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며(예를 들어 사랑하는 강아지를 굶기지 않고 매일 밥을 주는 양심) 이 ‘의무감’은 결국 사랑과 연결돼 있습니다. 소시오패스는 가족에게조차 의무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람을 단지 어떤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이 역시 계산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간섭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배우자나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가진 배우자를 찾겠죠. 양심의 결여라는 측면 이외에도 사랑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매우 황폐하거나 질척합니다.
일상적인 소시오패스들로부터 받는 사소한 상처들은 종종 그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억지로 동여매집니다. 이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그들의 행동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들로부터 우리 자신과 가족,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처방식을 알아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자 그대로 양심을 결여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싫더라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선의의 마음으로 소시오패스들을 포용하려는 마음은 결국 개인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비범한 소시오패스의 권위가 정당화됐을 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며, 일상적인 소시오패스들에게 묶인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로 인해 고통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주체성을 바탕으로, 아찔한 모험을 제시하는 소시오패스나 안일한 삶을 위해 기생하는 매혹적인 소시오패스의 유혹을 거부하고 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또한 ‘양심 없는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인 동정심으로 그들의 진짜 성격을 은폐하는 것에 동참해선 안 됩니다. 그들은 종종 눈물이 글썽한 표정으로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일상의 관계에 적용시키기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소시오패스라는 존재가 신문의 사회면, 나와 관련 없는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당장 함께 있는 사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시오패스들은 단순히 우리의 ‘동정심’을 원합니다. 불안해 보이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동정심이 그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촉구하는 일종의 연료 역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삐뚤어진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정은 사회악을 지속시키는 기폭제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덧붙여, 소시오패스의 삶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삶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