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월. 서울특별시 북가좌동의 한 개인주택에서는 인질극이 벌어졌다. 범인은 모두 넷. 그들의 이름은 안광술(당시 22세), 강영일(당시 21세), 한의철(당시 20세) 그리고 지강헌(당시 35세). 우리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렸을 때이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에 일어난 사건이라 이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말은 아마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

흔히 지강헌 사건으로 알려진 10월 8일부터 16일까지의 미결수들의 탈주극과 인질극. 이 사건은 영화배우 이성재씨와 최민수씨가 주연했던 영화 ‘홀리데이’로 근래 세간에 오른적이 있다. 물론 나는 이 글에서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인질극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나는 그들이 왜 교도소 이감중에 탈주하였으며, 무엇에 분노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지강헌은 어째서 교도소에 들어갔을까? 그는 분명 범죄자였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
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강도,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였다. 그가 탈주극을 일으켰을 때 그는 절도행위로 구속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형량은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 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다른 한명의 범죄자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범죄자의 이름은 전경환.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그의 죄목은 횡령이었으며 그 액수는 7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의 형량은 징역 7년.

지강헌은 이에 분노했다. 그가 그동안 훔친 금액을 모두 합친다 하여도 70억 원이
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미치지 못했다. 지강헌은 이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그가 저지른 범죄와 전경환이 저지른 범죄는 규모가 다른데 자신은 17년형을 살고 자신보다 더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7년형을 살다니. 그가 느끼기에 이것은 부당했던 것이다.

이에 불만을 느끼고 지강헌은 동료 몇몇과 함께 교도소 이감 도중 호송관들의 권총을 훔치고 서울시내로 들어간다. 며칠간의 숨바꼭질 끝에 그들은 서울의 북가좌동의한 개인주택에서 경찰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다. 그리고 안광술, 한의철은 자살 지강헌은 자살을 시도하다가 경찰 총격에 의한 과다출혈로 사망, 강영일은 체포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 대치·진압 과정에서 지강헌은 그 유명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전경환은 수십억을 횡령하고 징역 7년을 구형받았지만, 징역살이 2년 3개월 만에 출소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단편적인 예가 될 수도 있으나 이 사건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결말은 너무도 달랐다.

이 사건은 25년이 지난 이야기 이지만 그 25년동안 대한민국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풍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 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의 불산유출 사고가 어영부영 이사건 저사건에 묻혀 잊혀져 가는 것을 보며 무전유죄 유전무죄
를 외치던 지강헌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다시한번 이땅에 “유
전무죄 무전유죄”의 원칙이 실현될 것인가, 아니라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법이라는 저울 앞에 평등하게 설 수 있을 것인가. 가지지 못한자들이 돈이 없어 억울하게 죄인이 되는 현실은 비단 지강헌에게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당장 용산 철거민 사태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가지지 못한 자를 어떻게 차별대우 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게 없어 죄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강헌이 외친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우리 가슴을 후벼파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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