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Q 210의 천재가 아닌, 인간 김웅용이다

김웅용 충북개발공사 사무처장

   지난 5일 기자는 청주에 있는 충북개발공사로 떠났다. 충북개발공사는 빌딩이 아닌 가건물로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평화로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내로 들어가 사무처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김웅용 충북개발공사 사무처장이 들어왔다.
   그를 만나기 전에 알고 있었던 어렸을 적 이야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김웅용씨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평범한 아저씨 모습의 이면인 그의 어린 시절은 모두가 부러워했을 법하다. 그는 1963년 물리학 교수인 아버지, 의학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후 11개월에 한글을 깨치고 생후 4년 8개월 때 IQ 210으로 세계 최고의 IQ를 기록해 기네스에 올랐다. 4살 무렵 4개 국어를 구사하고 미적분을 풀었던 김웅용씨는 국내에서 월반을 거듭하고 1970년 8살 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도중 NASA 연구원으로도 활동했었다.
   하지만 현재 김웅용씨는 자신의 과거가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에 김웅용씨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과거가 있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없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느꼈다. 그는 “충북대학교 재학 시절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부러워 재청 원주고등학교 동창회에 편입했다. 다른 사람들은 원주고등학교 출신이면 동창회에 들어갈 수 있지만 나는 그 학교의 교가, 교목, 선생님들의 별명까지 모두 외우고 간곡한 부탁을 해서 동창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 그리고 충북개발공사 사무처장 김웅용으로서 현재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제게 물어요. 천재가 왜 건물도 제대로 안돼있는 곳에서 일하냐고. 충북개발공사가 어때서요. 토목공학과 출신인 제가 전공에 맞게 충북 지역 개발 사업을 도맡고 있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슈퍼스타K에 나오는 연규성도 저희 회사 출신이잖아요(웃음)”라며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나라 교육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이 실패로 가는 이유도 이곳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기자는 영재 당사자인 김웅용씨는 영재교육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잘해야 영재다. 수학이면 수학, 과학이면 과학 하나만 잘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평균 점수를 내서 평가해버린다. 예를 들어 수학 90점 과학 50점인 아이보다 수학 70점 과학 75점 맞은 아이가 영재로 평가된다”며 한 가지를 잘해도 영재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세분화된 사회에서 학문간 교류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역시 영재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방금 예를 들었던 수학 90점 과학 50점 아이를 수학 50점 과학 90점인 아이와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이끌어야한다. 수학에 재능 있는 아이는 수학을 특화해서 과학에 재능 있는 아이는 과학을 특화해서 같이 연구하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게 사회성과 융통성이 길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나름 영재들이 모여 있다는 카이스트에 있을 때, 서로 같이 협력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혼자 낑낑대면서 해결하더라”며 영재들에게 사회성과 융통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어“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 그런 경험이 없어 아쉽습니다”라며 어렸을 적 사람과 어울리며 살지 못해 사회성, 융통성을 배우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자신의 과거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가며 사람과 어울리며 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재의 아이들은 특별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아이들은 또래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다른 것이라고 하면 첫째 둘째 아들 모두 전교학생회 임원을 역임하는 등 사회성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김웅용씨는 “애들이 사람이랑 금방 친해지는 능력이 있어요. 이 역시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하면 금방 성적 올리고는 다시 친구들과 놉니다. 제 아들에게 사회성을 먼저 길러주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교원대 예비교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그는 “현재 교육은 본말전도가 되어있다. 교육의 근본인 철학 같은 것이 소외되고 학생들은 국어를 선택할까 영어를 선택할까 고민한다.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인터뷰가 끝나자 김웅용씨는 93년도에 교원대 기술교육과 출강을 왔었다며 교원대와의 인연을 회고했다. 특별하게만 느껴졌었던 그는 세계 3대 천재 김웅용이 아니라 인간 김웅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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