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소개하는 책은 『간추린 한국사』(한영우, 일지사, 2011)다. 저자 한영우 교수(1938~)는 조선 전기사 및 사학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여러 권을 저서를 출간하였다. 그러한 연구에 기초해서 『다시 찾는 우리 역사』(경세원, 1997년 초판)라는 개설서를 저술한 바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사신론』(이기백, 일조각)을 주로 읽었고, 80년대 중반이후 『한국사통론』(변태섭, 삼영사)을 참고하였으며, 90년대 중반이후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주목하고 있다. 저자 한 교수는 스테디셀러인 『다시 찾는 우리 역사』에 이어 『간추린 한국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사 분야의 저서로 읽어 볼 만 한 것이 많지만, 통사 형식으로 된 간결한 역사책은 교과서를 제외하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다. 교과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집필하고 검정을 통과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간추린 한국사』는 필자가 외부의 검정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하였으며, 또한 일관된 호흡과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균형 잡힌 역사서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는 사관으로 다섯 부류가 있다고 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 뉴라이트 계열의 사관을 들었다. 정치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사관은 지나치게 경제에 매달려 역사를 단순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그 동안 역사학계가 쌓아 놓은 연구 성과를 외면하고 있으며, 일제의 식민주의 역사학에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저자는 편향된 이데올로기 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지향해야 할 건전한 역사서술은 “민족, 국가, 계급, 지역이 서로 화합하는 평화지향적 홍익인간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평화지향적 역사서술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를 총체적·구조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가능하다고 하였다. 평화공동체의 꿈과 이상을 좇아 살아간 선비들의 삶의 자취를 그려보고자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저술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이 통사책을 축약해 쓴『간추린 한국사』는 간단하지만 한국사의 거시적인 흐름을 단번에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자평하였다.
『간추린 한국사』는 서론, 제1편 한국인의 기원, 제2편 고조선, 제3편 삼국시대, 제4편 남북국시대-신라와 발해, 제5편 고려시대, 제6편 조선왕조, 제7편 근대의 여명, 제8편 일본 강점기, 제9편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마다 비교적 큰 주제를 설정해 서술함으로써 흐름이 끊기는 것을 줄이고자 하였다. 서론에서는 ‘한국사의 특성에 관한 질의, 응답’이라는 제목 하에,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루었다.
1. 한국사의 왕조는 왜 수명이 길었나?
2.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는가?
3. 한국인 왜 셋(三)이라는 숫자를 좋아 하는가?
4. 한국은 왜 일본에 주권을 강탈당했는가?
5. 한국인은 어떻게 정체성을 지켜왔는가?
6. 왕조시대의 여성은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었는가?
문제를 제기하고 필자가 그에 대해 설명해 가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이 부분은 저자의 역사관이 가장 잘 드러난다.
한국사에 대해 특색 있는 주장을 펼친 부분이 많다. 한국인은 결코 단일민족이 아닐 뿐 아니라 유교문화가 역사를 후퇴시킨 것이 아니라 진보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4쪽), 유교는 홍익인간의 공동체문화를 가진 동이족의 풍습에 감동을 받은 공자가 이론화시킨 사상이라는 것(6쪽), 통일신라가 아니라 후기신라로 표현한 것(92쪽), 고려시기에 양인보다 노비인구가 더 많다고 본 것(115쪽), 무인집권기에 농민항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최씨정권은 이들을 무마하기 위해 부곡민과 노비들을 다수 해방시켜 주었다는 것(131쪽), 조선의 붕당정치는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순기능이 있었으나, 그 경쟁이 지나쳐 살육과 보복으로 이어지면서 차츰 나라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것(165), 영조대부터‘양반의 나라’에 서‘백성의 나라’로 가려는 민국 이념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181쪽), 대한제국은 황제를 중심으로 강력한 근대국가로 발전해 가고 있었으며, 이러한 발전에 초조감을 느낀 일본이 합방을 다그쳐 나갔다는 것(227쪽)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저자의 역사인식을 잘 표현하는 것이지만, 이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리고 저서의 내용 가운데, 독도의 내력이나(179쪽) 조선 황실 후예의 운명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한 것(242~244쪽)은 주목되며, 박정희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기술한 것도(2284~292쪽) 평가할 만하다. 또한 사진이나 그림 자료를 풍부하게 수록한 것은 가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의 목차 편성이 왕조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이나, 정치와 문화 부분에 중점이 두어져 경제 영역은 소홀히 언급되었다는 것은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리고 저자가 추구한 평화지향적 서술이 달성되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고, 또 서술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 부족함이 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안에 한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일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