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에 대해 논쟁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논쟁은 보통 역사가 가치 판단의 대상이기 이전에 사실로서 존재했던 것임을 부정하고 모든 역사를 주관적인 영역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발생한다.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논쟁이 있을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공리와 공준으로부터 시작하듯, 시각 차이에서 시작해 색깔론까지 이어지는 역사 인식 논쟁에도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기반이 있음은 분명하다.
   최근 특정인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언급한 일 때문에 우리 사회 전반에 역사 인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던 적이 있었다. 그 발언의 내용이 우리 사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쿠데타가 최선의 선택이 될 수는 없고, 사법살인이 이후의 평가에 맡겨야 할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이는 논쟁이 있을 수 없는 부분이고, 그 발언은 이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역사를 가치 판단의 문제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가치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되면 자신과 큰 관련이 없는 한 그 가치를 평가할 권한을 타인에게 미루곤 한다. 괜한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말을 아끼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논쟁이 있을 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하고 자신은 모두의 가치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이 짙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세대의 역사와 우리 사이가 시간적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 간격이 멀어지면서 그 시대의 역사가 점점 박제된 지식으로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박정희에 대해‘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쇠퇴시켰지만 경제를 발전시킨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박정희에 대해 그렇게 배웠다. 민주주의를 탄압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경제를 발전시킨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훌륭한 지도자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박정희가 경제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그 의문들을 차치하더라도 박정희로 대표되는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문장으로 박제된 채 남아서는 안 된다. 잘한 점과 못한 점만을 나열한 문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장을 읽는 사람이 두 가지 사실을 단순히 대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평가는 보다 엄밀한 과정을 거쳐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그 역사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5월의 쿠데타가 아직까지 ‘혁명’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붙는 이유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이유 때문이다. 인민혁명당 사건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것 역시 박정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대선 후보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에도 그 아버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구미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지고, 그 앞에서 당당히 사진을 찍으며 웃는 상황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싶다.
   지난 5일에 전(前) 대통령을 취재하던 기자가 잡혀가서는 징역 10개월을 구형받는 일이 있었다. 의경이 기자의 취재를 막으러 나왔는데, 기자가 취재를 계속하려 하자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명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블랙코미디를 보고도 그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쓴웃음만이 지어진다. 우리의 지난 현대사는 이미 지나간 역사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