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일반사회교육·23)

내가 쓰고 싶은 건

여름 외투

겨울보다 추운 실내에서

어깨를 감싸주는

그런

 

김은지, ‘여름 외투

 

슬슬 날씨가 달라져 끝내 옷장을 정리했다. 시원스레 다음을 기약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떠나보내기 아쉬운 녀석들 또한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아직도 파악하기 어려운 강내의 계절이 변덕을 부리는 날, 혹은 강의실 에어컨 바람이 유난히도 시리게 느껴지는 날 하루쯤은 더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늘 망설이게 된다. 어쩌면 여름 외투 같다는 것은 사계절을 함께하고프다는 마음이 아닐까.

 

나는 시집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시인의 말을 유심히 보곤 하는데, <여름 외투>를 집어 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은지 시인의 작품은 항상 우리와 가깝다. 그의 작품을 볼 때면 나도 금방 시를 적고 싶어진다. 웃기고 슬픈데, 조금은 좋은 이야기들은 언제나 세상에 필요하니까. 김은지 시인은 늘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갈 용기를 준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할머니의 사탕 상자 속 잡동사니 같은 어휘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남는다.

 

돈도 없고 뭣도 없지만’, 좋아하는 라이브 바에 걸려있는 문구다. 처음엔 굉장히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꽤 근사해 보인다. 작은 지하 무대에서 돈통에 현금을 받으며 공연하는 그들의 세계를 그들만의 언어로 잘 풀어낸 표현 같다. <여름 외투> 또한 같은 결에서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1차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상적인 표현이 일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가장 각별하다는 게 나의 오랜 지론이다. 때로는 이른 아침 엄마의 잔소리가 옆집 누나가 물려준 세계문학전집보다 훨씬 위대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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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픈 시집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김은지 시인을 찾게 되는 까닭은, 나도 항상 궁금하기 때문일 거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너는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낼까. 어쩌면 네 가지 단어 따위로는 다 말할 수 없을 수많은 그들만의 계절 속에, 항상 내가 있기를 바란다. 내게 여름 외투란 그런 것이고, <여름 외투>란 그런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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