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전 세계 한류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익숙한 케이팝 세계관에 녹아든 한국 전통과 현대 문화 요소는 작품의 깊이와 풍성함을 더하고, OST 또한 글로벌 음악 차트를 휩쓸며 음악 산업 전반까지 파급력을 주고 있다. 이번 흥행은 K-콘텐츠가 한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계적 공감대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케데헌》 누적 시청자 수 3억 돌파, 흥행 이유는? … “문화적 특수성 속에 녹여낸 보편성”
지난 6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케데헌》은 공개 첫 주에 약 920만 건 이상의 시청 수를 기록하며 미국·일본·태국·브라질 등 주요 국가의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Top 10에 진입했다. 또한 지난 17일 넷플릭스 공식 집계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케데헌》의 누적 시청 수는 3억 1,420만에 이르러, 플랫폼 역사상 최대 시청 수를 달성했다.
《케데헌》 흥행의 일등 공신은 무엇보다 실제 케이팝 창작자들이 참여한 고퀄리티 OST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헌트릭스의 곡 〈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서 통산 5주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핫 100’의 상위 10위권에는 다른 삽입곡인 〈Your Idol〉은 4위, 〈Soda Pop〉은 5위, 〈How It’s Done〉은 8위를 기록해 총 4곡이 올랐다.
미국 타임지는 이러한 《케데헌》의 세계적인 성공이 문화적 특수성 속에 녹여낸 보편성에 있다고 보았다. 매체는 “단순히 K팝을 소재로 차용한 것을 넘어, 한국의 신화와 일상적인 문화 요소를 모든 장면에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울의 거리 풍경이나, 주인공들이 식당에서 냅킨을 수저 아래에 놓고 식사하는 모습 등 세밀한 묘사를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케데헌》의 제작자 메기 강 감독은 지난 8월 22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내한 간담회에서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수치심’이라고 강조했다. 즉, 사람은 모두 각자 숨기고 싶은 게 있고, 수치심을 느끼는 부분이 있기에 극 중 주인공 루미의 두려움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하며, 이렇게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지점 때문에 모두에게 사랑받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 작품 속 다양한 한국적 요소에는 무엇이 있나
《케데헌》은 서울을 배경으로, K-pop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들이 낮에는 아이돌로 활동하다 밤에는 악령을 사냥하는 헌터로서 펼쳐 나가는 이중생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헌트릭스는 단순히 악령을 퇴치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의 춤과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이 감동을 통해 악령을 막아주는 ‘혼문’을 강화하거나 재건한다. 반면 헌트릭스에 대항하는 ‘사자보이즈’는 악령들의 왕인 귀마가 인간들의 혼을 뺏기 위해 결성한 악령 보이그룹이다. 이에 헌트릭스는 사자보이즈와 이들을 조종해 인간의 영혼을 흡수하며 힘을 키우고 세상을 지배하려는 귀마에게 맞서며 세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메기 강 감독은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케데헌》 기획을 시작했고, 따라서 한국 문화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로 인해, 《케데헌》 속에는 숨은 한국적 요소들이 정말 많다.
- 전통적 요소 -
# 저승사자와 사자보이즈
작품 속 악역인 ‘사자보이즈’는 한국 전통의 저승사자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검은 색조의 한복 차림, 그리고 긴 갓을 쓴 채로 묘사되어 한국의 전통적인 저승사자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 도깨비와 악령들
지옥에서 살고 있는 악령들의 모습은 대체로 도깨비의 형상을 띠고 있다. 이는 한국의 고유한 민속 신앙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 디자인이다.
# 호랑이와 까치
작품에는 편지를 전해주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와 3개의 눈을 가진 까치 ‘서씨’가 등장한다. 이 캐릭터들 역시 한국 민화와 설화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감독이 직접 밝혔다. 전령으로 나오는 까치와 호랑이는 대중적인 민화 장르 ‘작호도’가 모티브이다.
# 사인검, 곡도, 신칼
주인공 헌트릭스가 사용하는 무기들은 모두 한국의 전통 무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루미는 조선시대 왕들이 장식용 도는 호신용으로 지녔던 ‘사인검’을, 미라는 가야 시대부터 내려온 무기로 휘어진 것이 특징인 ‘곡도’를 사용한다. 조이의 무기는 무당이 굿에 쓰던 제례용 도구인 ‘신칼’을 모티브로 삼았다.
# 굿과 무속 의식
메기 강 감독은 음악과 춤으로 악귀를 쫓는 한국 무속 의식인 ‘굿’이 영화의 콘셉트와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무녀들이 굿을 하는 장면은 춤과 노래가 결합되어 누군가의 혼을 빼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K-pop 퍼포먼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무속인과 여성성
무속인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 굿 자체가 최초의 공연이라는 점이 케이팝 걸그룹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감독은 설명했다. 태초의 헌터는 무당으로, 굿에 동원되는 춤과 노래로 악령을 물리친다는 설정이 시대를 내려와 아이돌로 이어졌다는 세계관을 구축했다.
# 전통 매듭과 노리개
헌트릭스의 응원봉은 한국 전통 장신구인 ‘노리개’ 매듭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실제로 멤버들의 의상에도 노리개 장식이 사용되었다. 노리개는 조선시대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다는 장신구로, 헌트릭스의 의상에는 ▲벌매듭 ▲국화 매듭 ▲생쪽 매듭 ▲나비 매듭 등 다양한 전통 매듭이 사용되었다.
- 현대적 요소 -
# 한국의 다양한 거리와 명소
헌트릭스의 숙소는 잠실 롯데타워, 헌트릭스가 공연하는 장소는 잠실 주경기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남산타워 ▲낙산공원 성곽길 ▲북촌 한옥마을 등이 등장해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또한 헌트릭스가 치료를 위해 방문한 한의원, 헌트릭스 멤버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대중목욕탕에 가는 모습 등을 통해 한국인들이 누리는 일상 문화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울러 거리에 한글로 된 간판과 표지판이 늘어선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 도시의 모습을 세밀하게 전했다.
# K-pop 문화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팬 사인회를 열고 팬들이 이에 열광하는 모습과 함께 오색 찬란한 불빛이 들어오는 응원봉과 휴대폰 LED 전광판 그리고 플랜카드를 들고 이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통해 K팝과 팬들의 응원 문화를 고증했다.
# K-먹거리
헌트릭스가 공연 전에 ▲김밥 ▲컵라면 ▲과자 ▲호떡 ▲어묵탕 등을 먹는 모습으로 한국 음식을 다양하게 드러냈다. 아울러 식사 전에 냅킨을 깔고 수저를 놓는 행동으로 식사 문화도 세밀하게 보여줬다.
이러한 작품 속 다양한 한국적 고증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식당에서 젓가락 숟가락을 놓는 모습 등 고증을 통해 다양한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라며, “철저한 고증으로 한국 팬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팬들도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 《케데헌》 흥행으로 인한 효과 … 서울 관광객 수 및 K-푸드 인기 급증
《케데헌》의 전 세계적인 흥행으로 인해 작품 배경인 서울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증하는 추세이다. 지난 7월 외국인 관광객 수는 136만 명으로 집계되며 이는 작년보다 23.1%나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K컬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은 8월 말까지 누적 관람객 수 418만 9천822명을 기록하며, 2023년에 세운 역대 최대 관람객 기록을 8월이 끝나기도 전에 넘어섰다. 이뿐만 아니라 작품 속 전통문화 요소와 캐릭터가 반영된 박물관 ‘뮷즈(뮤지엄 굿즈)’도 큰 인기를 끌며 품절 대란이 일고 있다. 최고 인기 제품은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를 닮은 까치호랑이 배지로, 월평균 60여 개가 팔리던 이 제품은 지난달에만 3만 8천여 개가 판매되며 5억 원을 웃도는 매출을 냈다.
《케데헌》의 흥행은 국내 식품·유통 업계에도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단순한 캐릭터 마케팅을 넘어 작품 속 장면이 실제 소비로 이어지면서, 편의점과 베이커리, 식품 기업까지 협업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편의점 CU에서는 해외 결제 건수가 185% 증가하고, 이 중 김밥 매출이 231% 늘어나는 등 외국인 관광객의 K-푸드 소비 확대가 두드러졌다. 농심은 넷플릭스와 협업해 《케데헌》 디자인 포장 라면과 스낵 등 스페셜 제품을 한정 출시했고, GS25 또한 ▲전주 비빔·참치마요 반반 김밥 ▲제육 주먹밥 ▲모둠 분식 세트 등 신제품을 선보이며 작품 속 분식 메뉴를 현실 상품으로 구현했다. 파리바게뜨도 ▲소다팝 케이크 ▲곶감 파운드 ▲약과티그레 ▲쑥떡쿠키 등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을 내놓았고, 전국 매장을 《케데헌》 캐릭터로 래핑해 시각적 체험을 강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K-콘텐츠와 K-푸드의 결합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외국인 소비자가 한국 식문화를 체험하는 중요한 접점으로 자리 잡고 있어, 앞으로도 업계 전반에서 이 같은 협업과 실험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 세계 《케데헌》 열풍 속, IP 귀속 문제 등 우리나라에 남은 과제
이와 같이 《케데헌》으로 인해 전 세계에 K-콘텐츠 신드롬이 불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케데헌》이 한국적 요소를 소재로 활용했을 뿐, 실제 제작은 일본 소니픽처스가 맡고 배급은 미국 넷플릭스가 담당했다는 점을 짚는다. 이에 지식재산권(이하 IP)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돼 수익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제작사는 자금난에 시달리는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OTT 업계의 현실 또한 녹록지 않다. 넷플릭스가 2023년부터 4년간 3조 4천억 원을 한국에 투자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토종 플랫폼들은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에 내몰렸다.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수년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윤경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연구본부장은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은 ‘자본력’으로,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 대비 더 많은 투자를 제공하는 플랫폼과 거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하며, “IP 확보를 위한 자본 조달 역량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수익 공유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김성은 문화체육관광부 과장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IP를 확보할 수 있도록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를 신설해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이어 국내 제작사와 플랫폼 동반 성장을 위해 OTT 특화 콘텐츠 제작 지원, 출판·웹툰 등 원천 IP 발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 이남경 국장은 “우리는 《케데헌》을 통해 문화적 자부심을 누리고 있으나, 《케데헌》이 엄밀하게 우리 콘텐츠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전하며, 미래 산업 전략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K-콘텐츠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케데헌》 열풍은 한류가 여전히 세계를 매혹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나 동시에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 수 없었나”라는 뒤늦은 푸념이 아니라, IP와 플랫폼 주도권을 한국이 쥘 수 있는 전략이다. 한류가 진정한 국가 성장 동력이 되려면, 지금의 기회를 산업적·제도적 성과로 전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