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9월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쳇바퀴처럼 돌아갈 하루에 일찌감치 무료함을,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하루를 기대하며 떨림을 느낄 것이다. 나는 올해 대부분의 날을 전자에 가까운 상태로 보냈다. 매일 같이 우울하지는 않았지만, 종일 머리와 마음이 멈춘 듯이 고여있었다. 아주 미적지근하게. 현대인들에게 자주 찾아온다는 번아웃 증후군이 남 일 같지 않은 요즘, 나처럼 무언가를 시작하고 꿈꿀 용기와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노래를 빌려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라이더스 앨범 커버 (사진 / 애플뮤직 제공)
라이더스 앨범 커버 (사진 / 애플뮤직 제공)

 

번아웃 속에서 만난 청춘의 노래

라이더스20244월에 발매된 페퍼톤스의 데뷔 20주년 앨범 Twenty Plenty의 타이틀곡이다. ‘꿈을 찾아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리겠다라는 포부를 담아 세상에 나온 이 곡은, 지난 20년 동안 모두의 청춘을 노래한 페퍼톤스의 밝은 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노래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들리는 맑은 피아노 선율은 선명하고 푸른 하늘을 떠올리게 한다.

어른들은 네 나이일 때 뭐든 해봐야지. 나중 되면 하고 싶어도 못 해!’라며 청춘을 즐기라 말한다. 하지만 청춘들에게도 무작정 마음 가는 대로 해보고 또 그것을 즐기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에게 청춘이라는 단어는 큰 부담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불과 1년 만에 몸도 마음도 낡아버린 듯 느낄 무렵, 나에게 의기양양했던 20대의 첫해를 떠올리게 한 노래가 바로 라이더스였다.

 

처음시작’, 다시 달릴 수 있다는 믿음

마치 맨 처음 그날처럼 우린 시작하네

여전히 그대로 멈추지 않은 낡은 자동차

 

시원한 바람 속으로 멀리 달려가네

어딘가에서 기다리는 눈부신 바다를 꿈꾸네

 

노래를 여는 가사 첫 줄에 처음시작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무엇이든 호기롭게 시작하고 달렸던 1학년 때와 달라진 나를 책망하던 4월의 어느 날. 기분 전환을 위해 오랜만에 이 노래를 튼 순간 들려온 첫 가사는 삶의 갈피 하나를 쥐여주는 듯했다. 오래되어 낡아버렸어도 처음 그날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때 조금씩 싹트게 되었는데, 그만큼 나는 이 부분이 노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따뜻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모두 말하지만

아직까지 우린 모르네 눈부신 바다를 꿈꾸네

 

푸르른 우리의 꿈들 꿈이 아니기를

어딘가에서 기다리는 눈부신 바다를 꿈꾸네

우린 그곳에 달려가네

이대로 언제까지나

 

페퍼톤스는 모두가 영원은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좌절하는 대신 눈부신 바다를 꿈꾼다. 영원의 존재 여부에 관한 아리송함에서 비롯된 일단 모르지만 꿈꾸자!’라는 느낌의 가사는 기분 좋은 순수함 당돌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당돌함이 후반부에서는 꿈꾸는 눈부신 바다가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확장된다. 이 지점은 결국 영원은 없을지라도 그 속에 의미는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원을 확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꿈꾸고 달려가는 과정 자체에서의 의미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출발선, 불쑥 시작할 용기

우리는 왜 시작을 두려워할까? 나의 경우에는 남들의 말에 휘둘려 목표가 흐려지고는 했다. 목표가 흐려지니 미래를 꿈꾸는 것이 벅찼다.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어 나 자신을 속이고, 내 꿈과 목표를 잃어버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당장 1분 후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펼쳐질 미래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남들이 별로라고 해서 그것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의 시선은 잠시 제쳐두고, 끝내 나만의 바다를 꿈꿀 줄 아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여전히 내 바다는 흐릿하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꿈을 꿀 용기와 힘조차 없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이 글과 노래와 함께 다시 시작할 용기를 조금씩 채워 나가려 한다. 그리고 성급하지 않게 천천히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직 바다가 선명히 보이지 않아도, 다시 시작할 힘을 잃었다고 해도 우리에겐 언제든 달릴 수 있는 순간이 남아 있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언젠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맨 처음 그날처럼 시작할 수 있는 날을 그리며.

마지막으로,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며 변하지 않고 꾸준하게 무언가를 대하기가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매일 같지는 않더라도 처음 그날을 간간이 떠올리며, 불쑥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