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이지현(영어교육·25)
교실은 늘 아이들의 다채로운 얼굴들로 가득하다. 손을 번쩍 들며 답을 외치는 아이,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연필만 굴리고 있는 아이, 눈빛으로 다른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 당신이라면 어떤 얼굴에 더 눈길이 갈 것 같은가.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에서, 나의 시선은 영어 시간이면 유독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작아지는 표정들에 멈추곤 했다. 중학교 3학년임에도 알파벳 소리가 낯설고, 간단한 문장 하나 쓰기조차 버거워하는 아이들이었다.
처음엔 솔직히 그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니, 초등학교 때 뭐했지? 와… 이 아이들로 어떻게 모둠을 짜야 하지? 활동 수업은 또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마음은 오직 수업을 어떻게 굴러가게 할 것인가에 더 쏠려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파닉스부터라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반강제로 방과 후에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로 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도망쳤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복도를 달리며 아이들을 붙잡기도 했고, 우리 반 종례를 서둘러 끝내고는 각각 아이 교실 앞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가 책가방을 낚아채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억지로 끌어다 앉혀놓은 그 시간이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다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게 되었다. “선생님, 영어는 너무 어려워요. 재미도 없고요.” 다른 아이들이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이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외계어처럼 들린다고 했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더 배우기 싫어요.” “저는 어차피 영어 쓸 일 없는데요. 한국에서만 살 건데요.” 교실에 앉아 있는 내내 느껴야 했던 건 비교와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 작아진 아이들의 마음속 고백이 내 귀에 조금씩 닿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교사는 학창 시절 ‘모범생’으로 자라왔다. 성적도 좋고, 큰 반항도 없이 정해진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이 교사가 되곤 한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공부 자체가 두려운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지기도 한다. “시간을 좀 더 투자해 봐.”, “정말 열심히 노력해 봤어?”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나에게도 늘 두려움으로 남아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수영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여름마다 물놀이를 즐길 때, 나는 어릴 적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 때문에 물가에 가까이 가 본 적조차 없었다. 용기를 내어 수영을 배우러 간 적도 있었지만, 호통만 치던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결국 “다시는 수영을 배우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며 돌아섰던 기억이 있다. 아마 영어 앞에서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의 마음도 그때의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이후로 수업 시간에 내 시선은 자꾸 그 아이들을 좇았다. 옆에 다가가 작은 힌트를 몰래 알려주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를 맛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다른 아이들과 같은 목표를 향하되, 조금 더 단단한 발판을 마련해 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방과 후에 수업했었지만, 방과 후에는 놀고 싶다며 아이들이 대신 자신들의 점심시간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매일 점심시간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내가 불러내야 겨우 모였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먼저 날 데리러 왔다. “선생님, 빨리 오세요. 우리 기다리고 있었어요.” 밥을 허겁지겁 마시듯이 먹고 양손 가득 과자들을 챙겨 뛰어 올라가면,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영어 단어 몇 개를 읽어내고, 짧은 문장을 따라 말할 때면 아이들은 정말 기뻐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도 힐링이었다. 하루 종일 지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점심시간 아이들과 함께 웃다 보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 하나하나가 가진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영어 앞에서는 움츠러들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 신나게 떠드는 모습, 틀린 발음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던 아이가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서는 눈이 반짝이며 친구들에게 설명을 이어가는 모습…. 그런 순간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교사인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파닉스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나는 수영은 안 배우냐고? 사실 나도 다시 도전해 자유형을 넘어 배영과 평영을 배우고 있다. 아직 능숙하지는 않지만,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그 자체가 기쁘다. 그래서 더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할 줄 아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는 기쁨을 맛보기를. 작은 경험 하나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를.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이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주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며, 마음을 품어주는 어른으로 남겠다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교실에서 굴러가게 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이유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