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본디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조율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사회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치가 조정이 아닌 분열의 기술로 변질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의 말처럼 정치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전략’으로 소비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유권자들의 감정적 에너지를 자극하는 갈등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공적 담론의 깊이는 얕아지고, 사회적 대화는 갈등의 구덩이에 빠지기 일쑤다. ▲세대 ▲성별 ▲계층을 구분 짓고 서로를 경쟁 대상으로 만드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주목받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위협할 뿐이다.
서로를 갈라놓는 정치의 대표적 특성은 단순한 대립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예컨대 “남성 대 여성”, “기득권 세대 대 청년 세대”와 같은 프레임은 복잡한 사회문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며, 특정 집단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한다. 물론 이는 정치적 지지를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식일 수 있다. 누군가는 ‘내 편’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지지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는 ‘저쪽 편’이기 때문에 경계하거나 분노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프레임이 실질적 문제 해결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청년 세대의 취업난은 단지 고령 세대의 기득권 문제로 환원할 수 없고, 젠더 갈등 역시 제도적 불균형과 사회적 인식의 복합적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흑백논리로 몰아가는 순간, 정책 논의는 실종된다. 표를 얻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삶은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을 가르는 정치는 정치인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전가하는 효과를 만든다. 정치는 본래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이 전략은 문제의 원인을 타 집단의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분노의 화살’을 국민 내부로 돌린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은 ‘중재자’가 아닌 ‘편 가르기 전문가’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정치의 본질은 흐려지고, 대중의 피로도만 높아진다.
물론 정치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치는 단기적 지지율보다 장기적 신뢰를 쌓아야 하는 영역이기에 편 가르기 전략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다변화되는 오늘날, 정치인은 그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누군가의 아픔을 다른 누군가의 분노로 이용하는 방식은 결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치는 갈등을 부추기기보다 갈등을 풀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