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교 입학 전까지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나는 학과 공지방에 게시된 한국교원대신문 45기 수습기자 모집공고 글을 보았다. ‘대학에 가면, 학보사에서 활동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본래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재밌을 것 같아 지원하였다. 우리학교에서 내가 한 첫 선택은 수강 신청도, 심화 선택도 아닌 한국교원대신문 수습기자 지원이었다.

202331, 처음 신문사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신문사실에 보관된 1호부터 현재까지의 종이 신문들을 처음 보았을 때, 그간의 한국교원대신문이 걸어온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 그곳에서 수습기자 교육을 듣고 취재계획서 회의에 참여하였다. 선배 기자들이 열심히 회의하는 모습에, 당시 아는 것이 없던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회의 내용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신문사는 내 생각보다 훨씬 전문적이었고 체계적이었음을 느꼈다.

수습기자로 보낸 첫 학기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수습기자인 나를 22학번 선배 기자들이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가르쳐 주었다.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편집장이었던 재하 형은, 기자로서 지닐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모든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신기하게도 231학기, 취재기자 중 04년생은 나 혼자였으며, 신문사에서는 내가 막내였다. 그래서였는지 선배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았던 것 같다.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줬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이 피어난다.

정기자가 되었던 232학기는 마음가짐의 변화가 컸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업무를 했던 지난 학기와는 달리, 자연스레 이제는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결정적으로 차기 편집장으로 내정되었던지라,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주제에 대해서도 열의를 다했다. 수습기자일 때는 쓰고 싶었던 기사만 썼다면, 정기자가 되고서는 쓰고 싶지 않더라도 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취재하고 작성했던 것 같다.

나는 2312월부터 편집장 임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이전 편집장이었던 재혁이 형과 재하 형은 큰 산 같은 존재였다. 코로나 시절에도 신문사의 체계를 잡으며, 완성도 높은 신문을 만들어간 두 형이었기에, 그 뒤를 내가 잘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런 걱정 속에도 무사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건, 3학년 1학기임에도 신문사에 남아준 재하, 고은, 진희, 신영 4명의 든든한 22학번 기자들과 동기인 예랑이랑 소연이가 힘들 때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편집장으로서의 1년은 보람찼다. 편집장이 끝난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당시의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편집장일 때 나에게 있어 1순위는 오로지 신문사였다. 밤을 새워서 하는 기사 피드백이나, 수십 편의 기사를 보는 일 등은 힘들었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해낼 수 있었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다.

편집장의 자리에서 느꼈던 어려움은 외로움이었다. 신문사 조직 특성상 편집장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편집장의 위치에서 결정하고 해야 하는 일들은 기자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기자로 있을 때는 내가 실수한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 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편집장일 땐 내가 실수하면 그대로 실수한 채로 끝나게 된다. 그리고 언제 중요한 연락이 올지 모르며, 불시에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어 긴장의 끈을 항상 유지하여야 했다. 편집장으로 역임한 1년간, 자고 있더라도 연락을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핸드폰의 소리를 키우고 잤다. 생각보다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혼자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성격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자잘한 고민이나 편집장일 때 겪는 과정들을 기자들에게 얘기하거나 공유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는 기자들도 나만큼이나 고생하는데, 얘기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기자들에게 의지하고 얘기한다면 기자들은 편집장에게 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는 편집장을 그만두고 부장기자를 역임하면서 느낀 바이다. 그러니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 현재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는 하경이와 편집장을 역임할 후배 편집장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신문사에서 231학기부터 251학기까지 총 5학기를 보냈다. 신문사 내에 가장 선배 기자가 되니,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칭찬엔 인색해지고 혼을 많이 냈다. 후배 기자들에게 피드백으로 줬던 메모를 살펴보았을 때 칭찬이 거의 없어 스스로도 놀랐다. 다들 잘하고 있는데, 표현을 못 해준 것 같다. 칭찬을 많이 해주지 못한 후회가 남는다.

한국교원대신문 소속 기자로 활동한 3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느끼는 기억과 감정을 잘 간직하겠다. 그리고 477호부터 508호까지 만들어낸 신문을, 내가 쓴 기사도 마음속에 새겨두겠다. 여름이어도 선선한 신문사실의 냄새와 풍경을 머릿속에 담아두겠다. 마지막으로, 한국교원대신문에서 스쳐 간 모든 인연을 기억하겠다.

낯간지러워서, 기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이번호 기자칼럼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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