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이현지(영어교육·24)

고등학교 일과 중, 하루에 1, 2교시는 영어 시간이다. 우리 친구들에게 있어 그 2시간은 고난의 연속이다. 우선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말들 대부분이 한국어가 아니라 알아듣기 힘들다.

교과서에도, 수업 ppt에도 꼬부라진 알파벳뿐이다. 머리를 쥐어짜 단어 의미를 떠올려도, 문법을 몰라 해석이 안 된다. 선생님이 읽고 있는 저 문장은 대체 몇 번째 줄이지? 수업 흐름을 따라가는 게 벅차다. 주어, 동사, 목적격, 양보절- 분명 한국말인데, 이게 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열심히 다른 친구에게 물어가며 열심히 필기를 해보지만, 어떤 시점에서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잠에 빠져들기 일쑤다.

그렇다면 영어 교사에게 영어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수업 시간에 나는 인간 번역기이자 문장 문법 분석기이다. 물론 참고서에 다 번역되어 있긴 하지만, 번역도, 문법 설명도 학생들에겐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나는 목적격, 부사, 도치 같은 단어들을 동원해 가며, 본문 문장을 ppt로 풀어 열심히 설명한다. 하지만 기껏 애니메이션까지 집어넣어 열심히 만든 ppt를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맨 앞에 앉은 학생이 교과서에서 내가 설명 중인 곳을 잘 못 찾고 있다. 8번째 줄 중간 additionally 다음 부분 설명하고 있단다. 친구야. “,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뭐지?” 질문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다. 학생들은 나랑 눈을 마주치면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 어떤 친구는 아까부터 계속 잔다. 아이고, 아직 지문 하나밖에 못 끝냈는데 종이 친다.

고등학교에서 10년간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 수업의 문제점은 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늘 나를 괴롭혔다. 교사 중심, 문법 번역식 수업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요즘 번역기도 잘 나와 있는데, 누가 굳이 문장 해석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서 수업 방식을 바꿔보았다. 문법 설명을 줄이고 말하기, 쓰기 활동을 늘렸다. 학생들이 스스로 내용을 파악하도록 학습지를 활용하고, 비디오 자료와 모둠 수업으로 흥미를 유도했다. 수업 분위기가 활기차지고, 자는 학생도 줄었다. 하지만 학습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조장 학생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잠깐 학습지를 풀다간 친구와 잡담에 빠지곤 했다. ‘이럴 거였으면 그냥 문법 해석식 수업이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에 다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영어 시간이 가장 재미있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 교사에게는 그런 말이 빛 한줄기다. 학생들은 영어 수업에서 뭔가 다르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평소엔 쓰지 않던 영어로 말해보고, 친구들과 함께 활동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말이다. 그런 기대 때문에, 가장 수업에 참여를 안 하는 학생들도 유튜브 비디오가 틀어지면 적어도 30초는 화면을 쳐다본다. 물론, 그게 TED 영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뀐다. ‘조를 만들어 앉으라.’는 말에 재미있는 활동을 기대하지만, 정작 교과서 지문 분석이라는 사실에 곧 좌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의 눈에서 그런 무언가 다른 수업에 대한 기대를 언제나 읽을 수 있다.

교사들 역시 학생들에게 기대를 건다. 내가 열심히 찾아낸 영상에서 재미와 신선함, 그리고 단어 하나라도 얻어가길 바란다. 야근하며 만든 활동지가 아이들의 흥미와 참여를 조금이라도 끌어내 주길 바라며 교실로 향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대부분 조용히 무너진다. 학생들의 표정은 점점 시들해지고, 교실은 잡담과 멍한 시선으로 채워진다.

영어 수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변화는 누구 하나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교실의 변화가 영어 교사의 기대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흥미 있어 할거라 기대하며 자료를 찾고, 그들의 반응이 바뀔 거라 기대하며 수업 방식도 바꾸어 본다.

그 기대는 때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할 때도 만들기도 한다. 뿌린 만큼 거두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교사의 기대는 늘 불안하며, 때로는 훨씬 더 큰 좌절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없다면 어떤 변화도 시작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너무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한두 번의 시도가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조금씩 계속 바꿔보는 것이다. 아이들의 어떤 변화는 금방 눈에 보이지만, 어떤 변화는 눈에 금방 띄지 않는다. 무언가는 바뀌겠지, 하는 조금은 막연한 낙관을 품고 계속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어두컴컴한 영어 교실에도 빛이 들지 않을까? 그 빛이 모든 것을 비추기엔 너무 작더라도, 분명 그로부터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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