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일까? 나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인 힘의 표현만이 폭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고통을 외면하는 것, 또한 분명한 폭력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권력이든 간에 타인의 절박함에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 침묵과 방관이 남기는 상처는 말로 하는 폭력보다 훨씬 깊고 오래간다.
지금 우리는 또 한 번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오는 6월 3일, 국민은 새로운 리더를 선택하는 대선을 치르게 된다. 선거철만 되면 수많은 정치인들이 거리로 나서고, 국민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표정을 바꾸고 목소리를 낮춘다. 하지만 가끔 어떤 당선자들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태도가 바뀌고 빠르게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기도 한다. ▲인사치레로 가득한 말 ▲형식적인 사과 ▲실천 없는 약속. 그것은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무관심이며, 국민을 향한 기만이다.
진짜 정치는 보여주는 것에 있지 않다. 보여주기 위해 서민들의 집을 방문하고, 국민과 함께 악수하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그들을 향해 내밀었던 손이, 그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민의 삶은 말로써 감싸질 수 없다. 고통을 들여다보지 않는 정치, 진심 없이 다가오는 리더는 결국 가장 약한 이들을 또 한 번 외면하게 된다. 따라서, 무관심한 정치는 결과적으로 국민을 향한 또 다른 폭력이다. 문제는 바로 그 무관심이 종종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주인입니다”라는 말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막상 정책을 결정할 때 국민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던가? ▲반복되는 사회 문제 ▲양극화 ▲폭등하는 집값 등 우리가 봐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듣는 척, 이해하는 척은 결국 관심이 아니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포장된 공감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권력을 교체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국민을 향한 진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말과 태도의 온도에서, 약속 이행의 속도에서, 정책의 무게에서 그 진심은 드러난다. 카메라 앞에서만 국민을 향해 웃는 정치가 아닌,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국민을 위해 움직이는 리더가 필요하다. ▲국민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 ▲타인의 고통을 홍보의 소재로만 소비하는 정치 그리고 ▲대선이 끝나면 다시 고요히 침묵하는 정치야말로 가장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폭력이다.
정치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과 고통을 실제로 책임질 마음이 없다면, 그 누구도 리더의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 유권자인 우리가 진심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정치인은 계속해서 ‘척’만 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정치의 품격은 국민의 요구 수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무관심한 정치, 형식적인 공감에 만족할 수 없다.
무관심은 또 다른 폭력이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척만 하는 정치도 결국 그 폭력의 일종이다. 이번 6월 3일, 우리는 진심 없는 정치에 “아니오”라고 말하고, 국민을 위해 움직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예”라고 답할 수 있다. 투표는 단지 선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다.
이제는 국민도, 정치도 진심이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