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학자 칼 폴라니는 시장이 자연스레 운영된다는 ‘자기 조정 시장’ 개념을 부정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경제와 복지, 그를 넘어선 사회 전체의 모습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나타낸다. 이번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남재욱 교수님과 함께 《거대한 전환》을 읽으며,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에 대해 사유해 보고자 한다.
Q1.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입니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는 산업혁명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한 격변의 시기이자, 2차 세계대전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이런 격변의 시기에 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났을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저자는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자기 조정 시장이란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누군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생산 ▲소비 ▲분배 등이 자연스레 조정이 되는 시장을 뜻합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자기 조정 시장 개념에 따라 시장은 자연스레 운영된다고 생각했지만, 칼 폴라니는 오히려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것이 국가와 정치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에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제도가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상품화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상품화하기 시작하며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인간 ▲자연 ▲화폐 3가지의 예시를 들며, 이러한 것들을 상품화하는 과정이 기존의 사회를 파괴하게 되고, 이것이 비극의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스스로 자기 보호 운동을 만드는데 복지 제도의 기원도 여기서 찾게 됩니다. 따라서 시장의 힘이 사회를 파괴해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칼 폴라니는 이중 운동이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정리를 하면, 이 책은 사회를 시장화하는 하나의 힘과 그 시장화를 막기 위한 다른 힘이 맞서면서 사회가 이렇게 진행이 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읽게 되셨나요?
저는 이 책을 대학원 시절에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사회복지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국가 정책을 다루는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국가 정책보다 실제 현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약간의 고민이 있는 상태에서 사회복지대학원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제가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시는 교수님께 ‘제가 이번에 대학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저는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고, 이 시기에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을지 책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만나자 하셔서 연구실로 찾아뵀는데, 책 2권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 책 중 한 권이 이 책이었습니다.
Q3.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정책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현장에서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것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까, 이 둘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복지라는 것의 탄생 자체가 이중 운동의 맥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복지에 대한 우리의 1차원적인 시각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이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게 우리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봤을 때, 마치 몸이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병원을 가는 것처럼, 사회에 문제가 있기에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시각은 자기 조정 시장은 반드시 문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비유를 하자면 나이가 들면 아픈 게 정상인 것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복지라는 제도 자체도 예외적인 상황에 마치 주사 놓듯이 개입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 중 마치 교육처럼 필수적인 제도로 자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를 더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그 총체적인 사회 구조 안에서 제가 전공하는 분야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이해하게 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Q4.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어떤 계급이 전체 역사의 드라마에서 얻게 되는 배역은 그 계급이 사회 전체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그 계급이 성공을 거두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계급이 스스로의 이익이 아닌 다른 계급들의 여러 이익을 얼마나 폭넓게 또 다양하게 끌어안을 수 있고, 또 거기에 봉사할 수 있는가이다. 어떤 일개 계급이 자신들의 협애한 이익에만 집착하는 정책을 내놓고자 한다면, 그 자신의 이익조차 제대로 지켜내는 데 실패하게 되어있는 것이 거의 예외 없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존 사회 질서에 대한 대안으로써 그것을 아예 때려 부수고자 한다면 모를까, 조야한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계급이 사회 전체를 통솔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구절은 이 책 안에서는 주로 토지 계급 지주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왔는데, 저는 최근의 맥락에서 ▲사회복지사 집단 ▲교사 집단 ▲의사 집단 등 각 집단에 대입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계급 또는 집단들이 아주 많은 순간에 협애한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책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냅니다. 근데 해당 구절에서는 ‘너희가 너희 계급의 이해를 사회에 반영하고자 한다면, 너희 계급의 협약한 이해가 아니라 그 이해가 사회 전체의 이해에 어떻게 복무하는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라. 그럴 때 비로소 너희 계급의 이익도 챙길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사실 예전에 돌봄 관련 이슈가 있을 때 교사 집단을 보면서, 그리고 최근에 의사 집단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드는데, 그 행위자들이 사회 안에서 지금의 요구를 갖게 된 게 그 행위자가 스스로 만든 건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 역사적으로 우리의 제도가 만들어져 오고, 사회 질서가 만들어져 오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교사들 탓도 아니고 의사들 탓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시킬 때 내 요구도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현재 우리 사회와 잘 연결되는 것 같아 인상 깊게 봤던 문장입니다.
Q5. 이 책을 추천해 준다면 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디지털 전환에 관심이 많은 학생인데, 그 학생들이 이 책을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무척 많은 사람이 시장경제는 맡겨두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계속 비판하는 점이 애초에 자기 조정 시장 자체도 국가와 정치와 제도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자기 조정 시장의 작동도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조정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자기 조정 시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선진국에 ▲최저임금 제도 ▲중앙은행 통화량 조정 등의 제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제도들이 전부 자기 조정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맥락은 인간이 민주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제대로 해결되는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디지털 전환이라는 문제를 볼 때, 보통 기술 변화가 이루어지면 인간의 노동을 다 대체할 거라는 사고를 합니다. 하지만 기술 변화가 꼭 노동을 대체해야 하나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이 변화하더라도 그 기술이 교사를 대신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에 투자할 수도 있잖아요. 그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은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로 도움을 주는 쪽이 아닌 대체하는 기술에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는 기업들 입장에선 그게 단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술 투자는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하는데, ‘우리가 왜 기술이 투자되는 방향에 대해 민주적으로 의견을 내면 안 될까, 의견을 내는 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시대에 이루어지는 기술 변화나 노동의 대체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Q6.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교육이랑 복지가 사실 궁극에 다다르면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복지 국가의 발생 기원을 보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전쟁 ▲대공황 ▲혁명 등의 극단의 상황이 오지 않게 하려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복지 국가입니다. 이렇게 복지 국가라는 시각에서 시장경제가 원활히 운영되려면 훌륭한 생산적 인력이 필요하고, 민주주의가 원활히 지탱되기 위해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생산적 능력이 있는 노동자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제도가 교육 제도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복지 국가를 바라본다면 결국 복지와 교육은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사가 될 텐데, 민주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 전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직업입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제가 교육계에 있지 않아서 그런 면들도 있을 수 있지만, 교사를 포함해서 이 교육 분야에 계신 분들하고 이야기를 해보면 ▲교육 자체의 교육 과정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등 이런 것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당연한 현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교사를 꿈꾸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교육이라는 과정이 사회 전체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과 구조를 해야 되는가’하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 결론이 제가 얘기한 것처럼 민주적 시민을 길러내는 이게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이런 고민을 하면서 교육이라는 것이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자리와 역할 등에 대한 고민을 조금 가지면서 대학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