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닌 책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하나의 유행’으로 여긴다. 이러한 열풍은 ‘텍스트힙(Text Hip)’으로 불리며, 단순히 종이책을 읽는 것이 아닌 ▲종이 신문 읽기 ▲필사 ▲책 꾸미기 등 다양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교원대신문 504호 기획면에서는 이런 텍스트힙의 양상과 기자들의 생생한 체험기를 다루고자 한다.
◇ ‘디지털 네이티브’ 사이에서 유행 중인 ‘텍스트힙(Text Hip)’
‘사각… 사각……’ 인터넷에서 숏폼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인상 깊은 책 구절을 만년필로 종이에 옮겨 적는 영상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였고, 전자기기를 활용해 책을 읽을 수 있는 21세기지만, ‘텍스트힙’의 열풍으로 오프라인에서의 독서가 유행하는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은 텍스트힙을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개성 있다’를 뜻하는 ‘힙(Hip)’의 합성어”로 설명한다. 이는 ‘독서 행위가 멋지고 세련된 활동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지칭하며, 독서를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자기표현과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서전이나 독서 모임 등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해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거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책을 읽고 온라인에 공유함으로써 책으로 ‘개인 브랜딩’을 하기도 한다.
2024년 2월, 영국 매체 가디언지는 영국 내 MZ세대 사이의 ‘종이책 읽기 열풍’을 ‘독서는 섹시해(Reading is Sexy)’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하였다. 세계적인 모델 카이아 거버가 독서 모임을 만들고,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라고 말한 인터뷰를 인용한 것이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2023년 영국에서 책 판매량이 6억 6,900만 권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며, Z세대의 종이책 구매율 및 도서관 대면 방문 횟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독서 열풍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국내에서도 텍스트힙 열풍으로 인한 MZ세대의 종이책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8월 발행된 매경이코노미 2272호에 따르면, “현재 젊은 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생활해 온 ‘디지털 네이티브’”라며, “디지털 시청각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활자와 독서를 신선하게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새로운 것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젊은 세대가 독서를 ‘매우 신선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텍스트힙의 열풍에 대한 원인을 덧붙였다. 이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에 대한 전세대적인 관심이 증가하였으며,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의 독서와 문학에 대한 관심이 특히 증가하였다.
◇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나타나는 텍스트힙 관련 양상 알아보기
텍스트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한 가지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텍스트힙이 어떻게 대중들의 삶에 녹아들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텍스트힙 관련 양상 4가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종이 신문
종이 매체의 가장 큰 매력으로는 진중함과 신뢰가 있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6일신문’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진예정 씨는 “가십성 온라인 뉴스와 달리 신문은 최소 몇 시간은 숙성되고 엄선된 기사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이어 한 번 펼치면 어렵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을 읽게 되는 것도 신문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시카고 소재 언론사인 ‘디 어니언(The Onion)’은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하고, 전면 온라인 발행으로 전환한 지 11년 만에 종이 신문 발행을 재개하기도 했다.
# 필사
예전부터 이어져 온 필사는 개인이 선택한 텍스트로, 개개인의 ‘취향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며 새로운 의미를 담은 필사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필사 도서는 ▲시 ▲문학 ▲에세이 ▲철학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로 출간되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문해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필사 열풍에 이바지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필사 커뮤니티 ‘인팩트’의 이미현 대표는 “필사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활동이라 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필사의 장점을 말했다.
# 북커버 & 책 꾸미기
텍스트힙의 영향을 받아 책을 감싸는 ‘북커버’의 인기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북커버가 사생활 보호와 책의 훼손을 방지해줄 뿐 아니라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2월 2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북커버의 판매 수량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1월 한 달 동안 북커버의 판매량이 작년 동 기간 대비 163% 증가해 1년 만에 약 2.6배 증가했다. 또한 북커버에 ▲스티커 ▲브로치 ▲책갈피 등으로 장식하는 일명 ‘책꾸’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힙한 놀이 문화로 생겨났다. 이는 기성 상품에 나만의 독창성을 덧붙이는 취향의 커스텀화로 해석된다.
# 팬덤 독서
팬덤 독서란 유명인들이 책을 추천하거나 읽었다고 알리면 해당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부처의 가르침을 현대어로 재해석한 책 《초역 부처의 말》은 2024년 5월에 발간되어 주간베스트 국내도서 부문 100위권 대에 있었다. 하지만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장원영이 언급하여 주목받은 이후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에 따라 대중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연예인 추천 도서의 판매량 증가는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출판계는 팬덤 독서 현상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텍스트힙이 1020세대에 불러온 변화 … 도서 구매량 및 책방 등
텍스트힙 열풍은 1020세대의 독서율과 도서 구매량에 변화를 주었다. 또한 흐름에 발맞춰 새롭게 변화한 책방들도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텍스트힙 현상이 불러온 변화들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 1020세대 독서율 및 도서 구매량 변화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년층의 종합독서율이 15.7%로 2021년(23.8%)보다 크게 줄어든 반면, 20대(19~29세)는 74.5%로 조사 연령 가운데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다. 또한 EBS 뉴스에 따르면 YES24 조선영 도서사업본부장은 “기존 1020세대의 전체 도서 구매량도 전년 대비했을 때 18% 상승했고, 그 추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 흐름에 발맞춘 책방 변화
텍스트힙의 영향을 받은 책방의 대표적인 사례로 창원 가로수길에 있는 책방 ‘텍스트힙’이 있다. 이곳은 개인의 MBTI 유형에 맞는 MBTI 추천책이 진열되어 있고 날짜별로 생일책이 자리하는 등 특별한 방식으로 책을 추천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하동군 악양면의 ‘하동책방’도 있다. 해당 책방은 인생의 20가지 고민에 대한 처방전으로 책을 추천하는 종이약국과 포장된 책을 해시태그만 보고 고르는 블라인드 북이 마련되어 있다.
◇ 기자들의 Text Hip 체험기
# 승훈 기자의 종이 신문 체험기
2025.03.18 / 날씨: 새벽부터 하얀 눈보라가 치던 날
평소 영상 매체와 포털 뉴스를 통해 인터넷 기사를 자주 접하는 편이다. 한국교원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2주마다 종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지만, 종이 신문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기사를 작성하며 텍스트힙에 대해 알고, 종이 신문에 도전하게 되었다. 우리학교 도서관 지하 1층 ‘시민 休’에서는 다양한 종이 신문을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종이 신문 중 저명한 일간지인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교육 주간지 중 하나인 ‘한국교육신문’을 골랐다. 종합지는 30면 정도였으며, 한 부를 읽는 데 한 시간가량 걸렸다. ▲종합 ▲사회 ▲정치 ▲외교 ▲상식 ▲사람 사는 이야기 등 다양한 글이 있었다. 기사를 하나하나 읽으며, 인터넷 신문과 다른 점 세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누군가 정해주는 글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신문은 사람들이 관심 둘 만한 기사를 주요 기사로 설정해 노출하고,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기 위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여러 번 발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이 신문은 완성된 형태의 다양한 기사를 골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온전한 형태의 글을 읽음으로써 사건의 현장과 글쓴이의 생각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 기사는 빠르게 퍼지는 온라인의 특성상 짧고 빠르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종이 신문은 완결된 글로써 정보를 제공한다고 느꼈다. 특히 기획 기사 중 ‘교실 속 퍼진 혐오’를 주제로 하는 기사가 인상 깊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학생을 만나 기사를 준비했음이 드러났고, 기자의 사회를 향한 지적이 잘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나 홀로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점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인터넷 신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댓글의 반응을 살피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종이 신문은 기자가 쓴 기사를 나 혼자 읽고 생각하며,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읽으며 나만의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 혜원 기자의 독립서점 체험기
2025.03.12 / 날씨: 서늘하지만 비와 구름이 밀고 당기던 날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 서울로 떠난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년 전 직접 문을 연 독립서점 ‘책방오늘’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서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워낙 서점과 책방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방문하고 싶은 장소였다. 나는 저녁노을이 질 때쯤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책방 내부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전자책으로 보던 책을 오프라인으로 보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고, 곳곳에 책에 대한 추천 및 설명이 적혀있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특이하게 무슨 책인지 모르도록 포장이 되어 있지만 설명을 보고 책을 고를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에서 책을 구매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평소 사고 싶었던 세라 망구소의 책 《망각 일기》를 구매했다. 책을 구매하면서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잠시 살폈다. 내가 본 사람들의 느낌은 ‘책으로 위안을 받는 것 같다’였다. 나 역시 서점을 오는 여정의 설렘, 책을 구매하면서의 힐링, 책을 읽으면서의 위안을 경험했다. 힘이 들 땐 종이책으로 위로를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