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원(미술교육·24) 학우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영화는 2021년 개봉한 테무 니키의 작품으로 다발성 경화증으로 하반신 마비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야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애로 인하여 몸이 불편한 야코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홀로 보내며 그의 유일한 낙은 여자친구인 시르파와 통화를 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방식대로 데이트를 즐기던 와중 혈액염을 앓고 있는 시르파의 건강악화로 인하여 야코는 시르파에게 찾아갈 결심을 한다. 야코는 더 이상 음성의 영역에 국한된 그녀가 아닌 새로운 감각으로 시르파를 온전히 만나고 싶다.
그러나 야코의 여정을 세상은 순순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만난 스콜피온스의 티셔츠를 입은 수상한 남자는 여정에 있어 불청객이다. 강도행세를 하며 야코를 외딴 벙커에 두고는 금품을 갈취하고 폭력을 가한다. 이때 화면이 블랙아웃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면과 대비되는 사운드는 고조되어 가며 숨이 막혀오는 연출이 야코의 시선을 느끼게 해 준다. 집 밖을 나선 순간 유일한 구원자인 휴대폰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암흑 속에 시각과 하체의 감각이 차단된 체 극한의 상황이 코 앞인데도 야코는 이상하리만큼 재치 있는 유머와 위트로 죽음의 공포를 가볍게 거스른다. 그 짧은 순간의 야코를 보며 느낀 것은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점이었다. 야코가 집을 나서고부터 겪은 최악의 상황들은 어쩌면 장애를 가졌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법한데 야코는 오히려 담담하게 일어선다. 패닉의 상태에서도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인함이었다. 남들보다 제한된 감각으로 수용한 모든 것들은 야코의 내면에 차곡히 쌓이고 쌓여 그를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야코의 제한된 감각을 우리는 아웃포커싱이 된 화면으로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영화는 클로즈업된 야코의 신체 위주로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나머지는 블러 처리가 되어 흐릿하다. 위에서 언급한 블랙아웃이 된 화면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야코와 최대한 가까운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감독이 의도한 장치였다고 생각이 든다. 점점 몰입이 되어가며 야코가 느끼는 불편함과 답답함이 엄습해 오는 장면들에서 이런 상황이 나의 상황이었다면 하고 가정해 본다. 그저 주저앉고 싶지 않았을까, 다 포기해 버리고 좌절하진 않았을까 하는 나약한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다. 궁금했다. 야코의 강직한 기세는 어디서 왔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야코가 마침내 시르파의 집에 도착하고 그녀와 얼굴을 맞대는 장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코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포커싱이 된다. 시르파를 두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감정을 느꼈음을 짐작하게 됐다. 야코는 사랑이라는 마지막 감각으로 느낄 수 없던 또 다른 새로운 감각 느낀다. 나는 야코의 강인한 내면 깊숙한 곳에서 사랑을 읽어냈다. 사랑에서 왔구나. 야코는 시르파의 집으로 출발할 때 5명에게만 도움을 받는다면 그녀의 집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도움들은 시르파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가족의 사랑, 주변인들의 응원과 사랑,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믿는 야코 본인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도움은 사랑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를 아우르는 사랑의 힘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야코였다면 강인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야코가 잠에서 깰 때 달리던 꿈을 꾸다 깨는 장면이었다. 꿈에서 깨고 잠깐 멍을 때리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꿈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야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작년에 대학교를 다니다 휴학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동시에 반수를 시작하면서 매일 10시간을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꿈을 매일 꾸었다. 재학 중인 대학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나의 무의식이 만족스러웠던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을 꿈으로 꺼내어 현실 속 대학생인 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힘이 빠지기도 하고 꿈속에서 내 삶이 더 행복했기에 영원히 꿈이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꿈에서 벗어나 진짜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인지 공감되었다. 야코의 삶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야코는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칠지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나 또한 그럼에도 사랑으로 나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지탱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며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