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정다솜(영어교육·24)

7년 정도의 교직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년 차 교사로서 학생들과 축제를 준비했던 시간이다. 경험이 부족한 신규 교사가 중학생들과 함께 축제 부스를 계획하고 운영해야 한다니 막막했고, 끝없는 수업 준비와 행정 업무로 축제와 같은 행사는 가능하면 쉽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학생들이 부디 준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지 않는 수월한 부스(?)를 골라주기를 바라며 학급 자치회장 주도로 축제 준비 학급 회의를 진행하였고, 학생들은 치열한 회의 끝에 귀신의 집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귀신의 집이라면 그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을 말하는 건가? 순간 머릿속에는 부스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 의상, 소품 등의 과정이 스쳐 지나갔고, 잠시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필 많은 부스 중 귀신의 집이라니.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바탕으로 귀신의 집을 진행하기로 하였고, 담임 교사로서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계획이나 생각 따위는 없었으며, 학생들은 천진난만하게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간 마련부터 시작했다. “얘들아, 귀신의 집 가봤니? 귀신의 집을 운영하려면 어떤 공간이 좋을 것 같아?”라는 나의 질문에 학생들은 어두워야 해요!” “부스 운영을 밤에 하면 돼요!” 라고 대답했다. 참을성 있게 웃으며 나는 부스 운영은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야.”라고 대답했고, 학생들은 그제야 심각한 표정으로 공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학교에서 그나마 가장 어두운 미술실을 대여하기로 했고, 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색 4절지와 신문지를 활용하여 모든 창문을 가리기로 했다. 다음으로 업무 분장이 이루어졌다. 예상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학생이 귀신 역할에 지원했다. 분노를 억누르며 칠판에 필요한 역할을 모두 적어 내려갔고, 학생들은 가위바위보라는 공평한 방법으로 업무 분장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필요한 소품은 다행히 순조롭게 정해졌고, 미술실 꾸미기가 시작되었다. 축제 전날까지 미술실에서 계속 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술실을 꾸밀 시간은 축제 전 저녁 시간뿐이었다. 반나절 만에 귀신의 집을 꾸미는 것이 가능할까? 전전긍긍하며 남아서 미술실을 함께 꾸밀 학생들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놀랍게도 학급의 모든 학생이 남겠다고 했다. 부모님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학부모님들께 연락을 드리고, 학생들의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피자를 시킨 후 함께 미술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내 마음속에는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다른 반은 쉬운 부스를 골라 모두 집에 갔는데. 왜 하필 귀신의 집이람.’ 그런데 신기하게도 적극적으로 역할을 나누며 창문에 검정 도화지를 붙이고, 귀신 의상과 가면을 제작하고, 분장을 고민하고, 귀신의 집 입장권을 제작하는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얼굴에서 뿌듯함, 기대감, 걱정, 고민 등 다양한 감정의 색깔이 스쳐 지나갔다. 학생들에게서 이렇게 다양한 빛을 발견한 것은 처음이었다. 학생들의 기대감은 나에게까지 옮겨졌고, 우리는 10시까지 쉼 없이 귀신의 집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날, 귀신의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며 표가 30분 만에 동났고, 학생들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행차하셨는데도 너무 인기가 많아 바로 입장하지 못하시고 20분 넘게 기다리셔야 했다. 축제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학생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신의 집 청소에 모두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끝까지 다채로운 빛을 잃지 않으며, 자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한 위대한 프로젝트에 관하여 재잘거렸다. 그 순간 내가 참된 교육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학생들의 성장의 순간에 참을성 있게 함께해 주는 교육 또한 존재함을 생생히 경험한 순간이었다. 얘들아 잘 지내니? 그때 선생님 정말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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