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움직이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각기 다를 것이다. 누구는 식물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도, 다른 누구는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 교수의 서재에서 소개할 책에서는 식물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식물이 발아해서 새싹을 만들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중력의 영향으로 인한 식물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 말이다. 생물교육과 김재욱 교수와 함께 다윈 부자의 《The Power of movement in Plants》를 읽으며 식물의 움직임을 관찰하자.
Q1. 교수님께서 학부 시절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다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진화론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 부분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윈 선생님의 직업은 ‘박물학자’이고, 당시의 박물학자는 본인이 관심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탐구를 기록하고 소개하는 것이 직업이었어요. 저는 다윈 부자가 집필한 《The Power of movement in Plants》가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식물생리학자로 거듭나게 해준 책 중 하나가 이 책인데, 제목에서 보이다시피 식물의 ‘움직임’들을 자세히 관찰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정적인 이미지의 끝인 식물이 움직인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으실 수 있을 텐데, 이 책은 순수 내용만 5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식물의 움직임에 대해 방대한 관찰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식물생리학 전공이지만, 당시의 저는 뇌과학자를 꿈꾸며 주로 뉴런과 동물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언제,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저는 전형적인 이공계열 학생이어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과제의 하나로 다윈의 진화론을 다룬 《종의 기원》에 대해 읽다 보니 식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종의 잡종이 번식되는 경우와 되지 않는 경우를 모두 관찰하며 불완전한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 이론을 펼친 것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다윈 선생님이 식물에 대해 추가로 어떤 연구를 더 했나 궁금해서 찾다 보니 《The Power of Movements in Plants》을 접하게 됐습니다. 재밌는 사실인데, 다윈 선생님은 식물에 관한 책을 6권이나 출판하셨습니다. 그중 이 책이 가장 마지막에 출판된 책이고 가장 굵어 보이면서 내용이 재밌을 것 같은 책이어서 끌리듯 접하게 됐습니다.
Q3. 그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아마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 책 중 하나입니다. 저는 본래 신경생물학자가 될 생각이었고, 이 책을 접한 후 대학원 초반까지만 해도 식물학에 투신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근데 개인적 이유가 있어 신경생물학을 그만두고 식물학자가 될 수 있게 된 이유가 된 책입니다. 이 책 이전까지 저에게 식물은 고상한 취미일 뿐이었거든요.
Q4.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부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식물이 발아해서 새싹을 만들 때, 소위 말해 ‘헤드뱅잉’ 같은 움직임을 하는 걸 아는 분이 몇 이나 있나요? 이 책은 매우 원초적으로 해당 움직임을 기록했습니다. 첨부해 드린 그림을 같이 봐주세요. 양배추가 발아할 때 뿌리 쪽이 움직이는 걸 선으로 그린 겁니다. 물론 저거보단 정적이고 작게 움직여요. 언뜻 보면 별자리 기록 같지만, 아닙니다. 책 속에는 이런 기록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 굵은 책에선 식물이 빛을 받으면 어떻게 움직인다던가, 중력이 식물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든가, 밤에 식물이 빛에 의한 상처를 회복하는 것 같다든가 하는, 종의 기원에서처럼 도발적인 내용이 내내 이어집니다. 다만 당시는 추측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식물학자로선 오류도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굳이 부분을 따지자면 붙여드리는 것과 같은 날것의 기록이 아주 쉽게 이해되고 와닿았다는 점이 인상 깊고 좋았습니다.
Q5. 이 책은 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우리 학교에서 이공계열의 중등임용고시를 위한 공부를 하시다 보면 솔직한 말로 재미를 느끼긴 매우 어려울 거로 생각합니다. 원래 이공계열의 내용학의 재미는 매우 원초적 실험이나 관찰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내용학 자체는 너무나 기술적으로 발전해 버려서 지금 시점에서 접근해 보시면 이해하기 어려우시리라 생각합니다. 혹시나, ‘내가 지금 배우는 내용학 과목의 옛날 모습은 어땠을까’를 쉽게라도 보고 싶으시다면 이 책의 그림이라도 살펴보셔요. 내용학이 모두에게 가장 재밌던 시절의 생생한 기록 중 하나를 보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Q6.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현대의 내용학은 교수의 입장에서도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200년 전 정도의 내용학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매우 간단하면서도 재밌는 기록들이 많습니다. 근데, 교원으로 나아가실 때 이런 기록을 알고 공부를 하고 합격하게 됐을 때 좀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많고 색다른 방향으로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있어 보이는’ 딴짓을 하고 싶으실 때 제가 추천한 책이 아니라도 이러한 종류의 다른 기록을 보시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대략 100~400년 전 사이의 내용학 기록들이 재미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