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으며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매 수업 시간 졸지 않으려 애썼으며,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에 와서도 열심히 강의를 듣고, 내가 왜 대학교에 와있는지 되새기며 내 존재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신문사에 들어와 수습기자가 되어 이 칼럼을 쓰고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나의 최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겐 이런 삶이 틀에 박힌 삶, 행복하지 않은 삶일 수도 있지만 난 아직도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고,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나중에 내가 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이다. 내 인생은 때로는 속상하고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하지 않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한 결과가 좋지 않았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최선이란 무엇일까?’

최선(最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가장 좋고 훌륭함이고 다른 하나는 온 정성과 힘이다. 지금까지도 국민 MC, 소위 말하는 정상의 자리에 있는 유재석이 최선의 두 가지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유재석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제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기 때문에 매주 한순간, 한순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라고 말이다. 유재석의 성공 비결은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으며, 매 순간 온 정성과 힘을 다해 가장 좋고 훌륭한사람이 되었다.

최선의 기준에 정답은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며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나의 최선과 너의 최선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언제나 결과가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올 수는 없다. 예컨대 안타까운 말이지만 매일 운동하고 자기 관리를 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죽을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왜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런 결과일까.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며 자책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최선을 다한 나를 다독이면서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최선을 다했던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 그 과정에서 행복했으면 돼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나를 놓아주고 미래의 나를 응원한다. 처음엔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나의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질 때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배우고 성장한 것 같다.

최선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최선의 반의어를 찾아보았다. 최선의 반대말은 최악이다. ‘최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이 나온다. ‘불안이는 주인공 라일리를 위해 머릿속에서 미래에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고 걱정하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나는 과연 불안이의 걱정은 라일리에게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적당한 불안은 우리의 인생에 이롭다. 하지만 매 순간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며 불안으로 살아가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고 행복하기만 해도 부족하다.

1년 전쯤 갓생 살기열풍이 돌면서 사람들은 하루의 모든 시간을 알차게 살아가는 삶에 열광했다. ‘갓생이란,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 열풍이 1년 정도 지난 지금, 우리 세대는 갓생의 과열 양상을 보이며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갓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이 윤택해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던 것이었다. 갓생을 사는 사람들만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매체를 통해 보이는 갓생처럼 살지 않는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최선을 다한다면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한순간이라도 행복해지자이다.

모든 과정이 행복으로 가득 찰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이유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행복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나 자신이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와 미래보다는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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