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 인천해원고등학교 교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거의 15년이 넘어 늦깎이 교사로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대학 다닐 때 학과 교육학회 활동 경험 및 교생실습 경험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교육 현장과 관련한 책도 읽어보며 나는 어떤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긴장되는 2월을 보내고 나서 3월 첫 개학 날이 되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직업으로 첫날부터 교내 메신저를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업무 관련 쪽지와 담임 반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 수업 준비, 학생 면담 등 정신없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좋은 교사로서의 모습인지 가늠이 되지 않던 시기이다. 2학년 교무실에 3년 차 어린 선배 교사가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처음 한 달은 조금씩 팁을 주며 안내를 해주었다. 그런데 같은 교무실의 50대 선배 교사님이 나이 및 출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물어보며 다가왔고 그러다 보니 이 3년 선배 교사가 고등학교 7년 후배라는 것을 서로 은연중에 알게 되었다. 그 후 그 3년 선배 교사는 나에게 학급 운영에 관한 팁을 주던 것을 어느 날 멈췄고 나는 조금씩 내 방식대로 학급을 운영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 인원을 반마다 기재하여 통계를 내고 매일 실제 교실에 남아서 야간 자율학습 인원을 체크하는 것은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방학 중 보충수업을 강하게 독려하고 반별 인원수를 비교하며 보충수업 신청자 수가 담임의 역량인 것처럼 여겨질 때는 약간 영업사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5년 만기를 채우고 두 번째 부임지에서 갑자기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초임지에서 1, 2학년 담임만 하다 3학년 담임을 하니 입시라는 또 다른 영역의 업무가 생겼다. 3학년 담임으로 업무 분장을 받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분은 3학년 부장님을 비롯한 주변 선생님들이었다. 일단 긍정의 말과 응원의 메시지만으로도 지쳐있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러한 말은 교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규정을 위반한 학생들에게 따끔하게 혼내기보다는 따뜻한 목소리로 이리저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긍정적 방향의 말이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담임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고3 대학 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는데 진학사 사이트에 같이 들어가서 작성하던 와중에 이름을 한자로 입력하는 란이 있었다. 우리 때를 생각하고 ‘너 이름은 어떤 한자 쓰니?’라고 별생각 없이 물어봤는데 이 학생이 자기 이름 한자를 몰랐던 것이었다. ‘어떻게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모를 수 있니’라는 한마디가 학생의 감정을 건드렸는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학생과 원서작성을 같이 끝내기는 했지만, 이 학생의 감정을 풀어주느라고 방과 후에 저녁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오해를 풀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년간의 담임 생활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고 일단 내 스스로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있었다. 또한 이제 문제가 생기더라도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며 책이나 주변의 조언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 체득하여 얻은 해결책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세 번째 학교에서는 코로나 시기에 근무하며 난생처음으로 온라인 등교를 경험하며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고3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하라고 하여 부랴부랴 태블릿 사용법을 익혀 강의를 녹화하고 필요한 부분을 재생하며 온라인 실시간 강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떠올려 보면 학생 생활 지도와 수업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그 주변부가 계속해서 변해가며 교사로서의 적응을 요한다. 학생 생활 지도, 수업, 입시지도와 같은 업무 능력이 늘어가고 교사들과의 관계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갈 때 행복한 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